5년마다 학교를 옮겨야 하는 직업의 특성 속에서 난 4번이나 학교가 바뀐 나름 15년 차 교사다. 한 직업을 이 정도로 팠다 치면 나름의 노하우에, 꽤 높은 자부심을 갖고 있어야 할 텐데, 교직 생태계를 잘 모르는 친구가 나에게 "너 이제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거야?"라고 하면 "응!"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기는 힘들다. 물론 이 머뭇거림의 이유가 한국인의 특성인 남을 더 배려하는 기질, 잘난 척보다는 겸손이 더 박수받는 사회의 통념에 적응한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런 이유로는 좀 부족하다. 난 정말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직업군들이 다 그렇겠지만 교직에서도 나름의 생태계가 존재한다. 내가 생각하는 생태계는 크게 3가지의 부류로 구성된다. 승진해서 교장 또는 더 나은 전문직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 승진보다는 소위 워라밸을 꿈꾸며 지금의 행복에 투자하는 사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중간에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양쪽 모두에 아슬아슬한 발을 걸치고 있는 사람. 마지막이 나다.
첫 신규 발령 후에 낯선 학교에서 적응하면서 본 광경 중의 하나는 학교엔 칼퇴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교사라는 직업이 가진 메리트의 꽃은 방학과 칼퇴인데, 그중 하나를 포기하는 사람이 있다니, 그 이유가 궁금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승진을 위해 학교의 일개미를 자처하며 자신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떠받는 비자발적 워커홀릭의 위치를 가진 사람이었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했고 현명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저렇게 승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승진을 한다면 그 승진은 온전히 나의 힘과 능력으로, 그리고 반드시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명제하에 승진과 관련한 여러 모임, 연구회도 나가보았다. 그런 곳에는 나랑 비슷한 나이지만 이미 많은 실적을 쌓은 사람들이 있었고 난 그 경험이 자극이 되었다. 그 이후 나도 승진을 위한 몇 번의 연구대회와 내 실적을 쌓기 위한 노력들을 해 보았지만 크게 결과가 나온 건 없었고 난 이때부터 조금씩 지쳐갔다. 승진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방법을 검색했고 주변에서 승진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대우까지 받는지 등의 부정적인 예들을 읊으며 승진하지 않는 자의 정당성을, 승진하지 않는 자의 도덕적 우월을 입증하려 했다. 이제 나는 어떻게 실적을 쌓을까 항상 공문을 살펴보던 열정교사에서 나에게 배정된 공문도 웬만하면 '해당 없음'으로 처리해 버리는 그냥 교사가 되었다. 삶은 편해졌지만 마음이 편해진지는 모르겠다.
노력하지 않으면서 노력한 사람에게 질투는 많아진다. 하지 않을 거면서 기회가 주어지면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다. 내가 부족한 거면서, 내가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나에게 내가 내린 교직병명의 증상들이다. 가리츠는 일과 아이들을 좋아하지만 50대가 되어 이렇게 아이들과 농담하며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제 고민의 시간이다. 이 고민의 끝에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 선택을 나중의 내가 사랑해 주고 잘했다고 토닥여줬으면 좋겠다. 나를 사랑해 주는 마음이, 주변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이 지금의 중대한 결정을 사소한 고민 정도로 넘길 수 있게 해 주길 희망한다. 잘될 거다. 그래서 난 다시 교실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