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행복의 반비례

by 영복

고요한 안방의 킹사이즈 침대는 주인을 잃었다. 아파트에서 가장 넓고 쾌적한 공간을 뒤로하고, 우리 세 식구는 집에서 가장 작은 아이 방에 구겨지듯 누워 밤을 맞이한다. 방문을 열면 훅 끼쳐오는 건조한 공기, 이리저리 얽힌 팔다리, 그리고 귓가를 간지럽히는 나지막한 숨소리들. 우리는 지금 가장 좁은 곳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넓은 행복을 누리고 있다.


아이를 낳기 전, 아내와 나는 넓은 침대에서 각자 편안한 잠자리를 누리며 잤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직후 우리는 '전략적 별거'를 선택하게 되었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밤새 시달리는 당번과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쪽잠이라도 자야 하는 비번으로 나뉘어, 한 명은 아이 곁에, 다른 한 명은 안방으로 흩어지는 방법으로 서로의 잠을 보충했다. 그때 우리는 잠을 얻은 대신, 서로의 온기를 잠시 미뤄둬야 했다.


아이가 조금 자란 지금, 우리는 다시 뭉치기로 했다. 하지만 그 장소는 넓디넓은 안방이 아니다. 우리는 자석에 이끌리듯 밤이 되면 아이의 좁은 방으로 모여든다. 아이의 침대와 그 옆 맨바닥에 깐 두꺼운 이불, 그 모호한 틈 사이로 우리의 몸을 욱여넣는다. 솔직히 말하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잠자리다. 자다가 뒤척이는 아이의 발길질에 아내는 명치를 맞기도 하고, 아이의 때 아닌 괴성에 놀라 우리는 동시에 잠을 깨기도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좁고 불편한 잠자리에서 나는 전보다 훨씬 더 깊은 마음의 평안을 느낀다. 어둠 속에서 손을 뻗으면 닿는 아내의 체온,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아이의 작은 숨소리. 그 촘촘하게 맞닿은 살결이 주는 안정감은 여유 있는 공간이나 값비싼 가구들이 결코 줄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는 보통 행복이 '여유'에서 온다고 믿는다. 더 넓은 집, 더 큰 차, 더 많은 개인 시간. 하지만 요즘 나는 행복이란 여유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이 닿는 거리의 밀도에서 온다는 것을 깨닫는다. 넓은 공간이 주는 쾌적함은 몸을 편하게 하지만, 좁은 공간이 주는 북적거림은 마음을 꽉 채운다. 아이 방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행복은 거창하게 포장된 선물 상자가 아니라, 서로의 숨결이 섞이고 살결이 닿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 작은 틈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같은 것이라고. 서로의 존재를 1초도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이 좁은 방의 불편함이야말로, 우리가 가족임을 가장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더 자라 자기만의 공간을 원하고 문을 닫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다시 넓고 쾌적한 안방으로 돌아가겠지만, 아마도 꽤 오랫동안 이 좁고 덥고 건조했지만, 사랑스러운 아이 방의 밤공기를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오늘 밤도 나는 좁은 틈을 비집고 아이의 방으로 들어간다. 내 왼쪽에는 아내가, 그리고 가장 안쪽에는 아이가 내뿜는 온기가 난로처럼 쌔근쌔근 타오른다. 숨결이 닿는 촘촘한 거리, 딱 그만큼의 공간이 지금 내게는 세상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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