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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닉 Nov 30. 2023

<열대병>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 이야기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촬영된 영화의 극초반부. 군인 무리는 들판 위에서 시신 한 구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는다. 핸드헬드로 촬영돼 분주하게 흔들리는 화면, 무전기 소리와 대화 소리가 이루는 중첩의 난잡함. 그리고 카메라는 뒤로 한 번 빠진다. 픽스된 채 정적으로 촬영된 익스트림 롱 쇼트. 그들을 마치 덤불 속에서 감시하는 듯 한 핸드헬드의 트래킹 쇼트, 그리고 이어지는 또 한 번의 정적인 롱 쇼트. 군인들이 멀어진다. 여기서 정말, 마법 같다고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기이한 달리가 일어난다. 음악이 흘러나오며, 카메라는 서서히 군인들이 걸어 들어간 정글로 따라 들어가기 시작한다. 기이하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달리, 그리고 너무나 급작스러운 음악의 삽입. 현실처럼 촬영된 군인들이 멀어지며, 동일한 쇼트는 이내 초 현실의 영역으로 접어든다. 그리고 이어 꿈같은 컷이 뒤따른다. 아까의 시신으로 보이는 벌거벗은 남자가 들판의 반대 방향으로, 정글에서 나오는 것을 보여준다. 시신에서 분리되어 들판을 떠도는 남자의 영혼임이 틀림없다.


이 짧은 오프닝 씬에서 일어난, 현실에서 초현실로의 전환은 영화의 전체적인 구조를 암시한다. 열대병은 2부로 나누어진 영화다. 1부는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이며, 2부는 호랑이 영혼을 쫓는 한 사냥꾼의 이야기이다. 또한 하나의 이야기를 둘로 나누고, 중간을 비약해 버린 영화이기도 하다. 열대병은 사랑의 시작과 끝만을 다룬다. 1부에서 사랑에 빠지는 두 남자는, 2부에서 한쪽은 호랑이 유령, 한쪽은 그 유령을 추격하는 사냥꾼이 되어 정글이라는 미로를 헤맨다. 처음에는 사냥꾼이 호랑이 유령을 쫓고, 나중에는 호랑이 유령이 사냥꾼을 쫓는다. 어쩌다 두 애인은 서로를 사냥꾼과 사냥감의 자리를 바꿔가며 사냥하게 되었나.


1부. 주인공 통은 얼음을 자르는 공장에서 일하고, 그와 애인 관계로 발전하는 켕은 군인 신분이다. 둘은 낮과 밤이 뒤바뀌며 뒹구는 반복의 시간 동안 도시를 돌아다니며 사랑을 느낀다. 너를 무척 좋아해,라고 쓰인 메모를 품 속에 간직한 채. 통은 1부 내내 뿌듯한 듯 카메라를 행복한 표정으로 종종 응시한다. 1부는 사랑이 탄생하는 과정이다. 1부가 끝나갈 때쯤, 둘은 야심한 밤 숲 속에서 서로의 손을 애무한다. 애무가 끝나자 통은 어두운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켕은 오토바이를 타고, 밤의 도시를 배회한다.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침이 되자, 혼자 일어난 켕은 마을의 소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2부. 호랑이의 그림. 2부의 제목은 영혼의 길이다. 여러 동물로 변신하는 사람이 정글을 돌아다니며 요술을 부리고 있다. 호랑이 영혼이. 2부는 정글 속에서 진행된다. 군인 켕은 호랑이 영혼을 사냥하기 위해 정글 속으로 향한다. 그리고 앞서 말한 기묘한 추격전이 시작된다. 남자는 호랑이 유령을 잡기 위해 총을 들고 정글로 들어갔지만, 2부의 중간에서 원숭이와 나눈 대화 속 쫓기고 있는 것은 총을 든 남자 켕이다. 호랑이 유령은 벌거벗은 통의 모습을 하고 켕을 괴롭힌다. 그 끝에서, 1. 밤, 켕은 나무 위에서 휴식하며 꿈을 꾼다. 호랑이의 꿈을. 2. 낮. 켕은 호랑이의 발자국을 보며 유령을 추적한다. 벌거벗은 남자, 호랑이의 유령이자 통 또한 켕의 뒤를 추적한다. 유령은 켕의 무전기의 소리에 이끌린다고 한다. 3. 유령은 괴성을 지르며 켕을 덮치고, 뒤엉키는 싸움 끝에 유령은 도주한다. 4. 원숭이는 켕에게 호랑이가 그림자처럼 켕을 쫓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를 죽이라고 지시한다. 5. 켕은 호랑이를, 유령을 사냥하기 위해 몸에 진흙을 바르고, 그를 지켜보는 원숭이를 향해 원숭이 소리를 내어본다. 6. 유령이 정글 어딘가에서 울며 도망친다. 밤. 괴성이 들린다. 켕은 들판에서 귀신을 유인하려 소리를 내고 있다. 카메라는 켕을 감시하는 듯 덤불 속에서 롱쇼트로 그를 촬영한다. 7. 울음소리가 들리고, 켕은 총을 발사한다. 빵! 총알이 도착한 장소에는 소 한 마리가 쓰러져 있다. 소의 영혼은 정글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반딧불들이 나무에서 빛나고 있다. 8. 켕 또한 숲 속으로 따라 들어간다. 호랑이의 이미지. 다른 동물의 기억으로서만 살아가는 동물. 이 순간, 영화는 다시금 1의 잠자던 켕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어디선가 7에서 발사한 총소리가 울려 퍼진다. 정글 속에서 세 겹의 시간이 중첩된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의미 없음. 관객도, 영화도, 무엇보다 켕도 길을 잃었다. 정글 속에서, 끝없는 시간의 반복 속에서. 그리고, 쫓기는 동시에 쫓는 이 순환 속에서. 그리고 켕은 호랑이를 만난다.

“그래서 지금, 어째선지 나 자신을 보고 있다. 나의 어머니, 나의 아버지, 공포, 슬픔.” 켕은 카메라를 응시한다. 1부에서 통이 카메라를 응시하던 것처럼. “모두 너무 현실적이어서, 그런 것들이 삶을 생각하게 했다. 이전에 너의 영혼을 빼앗았지. 우리는 사람도 동물도 아니야. 호흡을 멈춰.” 호랑이는 대답한다. “보고 싶었다.” 켕은 호랑이에게 말한다. “나는 네게 내 영혼, 살, 그리고 기억들을 바친다.” 켕의 클로즈업. 이어지는 정글의 새벽하늘.


열대병은 주인공이 둘인 영화다. 영화는 1부에서는 통을 따라가고, 2부에서는 켕을 따라간다. 또한 정글 속에서 추격전을 벌이는 호랑이 영혼 (의 모습을 한 통)과 켕은 누가 사냥꾼이고 누가 사냥감인지 불분명하다. 그러나 끝에서 상대를 잡아먹는 것은 호랑이이며, 처음 정글로 들어간 것은 켕이다. 둘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들을 살펴보자. 야외극장에서 켕은 통의 허벅지에 손을 올리고, 통은 그 손을 허벅지로 옥죄여 놓아주지 않는다. 둘이 서로 손을 핥으며 애무하는 장면에서도, 둘 모두 차례로 상대의 손을 핥는다. 여기서 사랑은 양방향성을 띤다. 오고, 가는 사랑이다. 그러나 손을 애무하는 게 끝나자 통은 정글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1부에서 보인 두 (사실상) 섹스 신에서 명확한 것은, 처음과 끝이다. 허벅지에 손을 먼저 올린 켕과, 섹스가 끝나고 정글 속으로 떠나버린 통, 그를 뒤에서 지켜보는 남겨진 켕. 통이 떠나는 장면은 실제로 둘의 사랑이 끝나는 장면은 아니지만, 무시무시한 암시이다. 사랑 이야기가 한 애인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끝난다. 그에 반해 켕은 오토바이를 타고 혼자 도시를 누빈다. 사랑의 행복에 겨운 켕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사랑을 이룬 한 청년의 기쁨이 아닌, 곧 끝나버릴 사랑에 대한 불안뿐이다. 1부는 로맨스 영화로 시작해 차가운 공포영화의 암시로 끝난다.


그렇다면 왜 2부는 공포영화로 진행되는가. 우리는 1부에서 막 시작된 사랑을 방금 목격하고, 2부로 급작스럽게 던져졌다. 2부에서는 왜인지 모르게 켕이, 호랑이 유령의 탈을 쓴 통을 사냥하고 있다. 아까의 섹스신을 떠올려보라. 이 영화에서 부각되는 것은 사랑의 과정이 아닌, 처음과 끝이다. 사랑의 끝은 공포영화다. 특히나 한쪽이 다른 쪽을 잊지 못할 때에는. 기억. 감독은 인터뷰에서 밝혔다. 사랑은 고통이다.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2부의 켕은 내내 통의 기억에 집착하며, 통이 1부의 마지막에서 사라진 곳 - 즉 정글을 헤맨다. 그러나 끝에서 켕이 깨달은 것은 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열대병은 불교 영화이다. 이 영화의 끝은 켕의 해탈로 끝난다. 켕을 해탈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정글 속에서 길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 무의미한 굴레와 순환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는 것, 그리고 호랑이를 직시하는 것이었다. 호랑이를 설명하는 글귀에서는 호랑이 유령을 다른 동물의 기억으로서만 살아가는 동물이라 묘사한다. 켕이 갇힌 이 정글과 호랑이는 켕의 기억이며, 통에 대한 기억이다. 통의 기억 속에서 마침내 마주한 호랑이는 바로 자신. 또 다른 자신. (그래서 지금, 어째선지 나 자신을 보고 있다) 공포, 슬픔. 켕은 통의 기억을 쫓아다녔고 통의 기억에게 쫓겼다. 그러나 그게 전부 무슨 의미인가. 통은 1부에서 정글 속으로 사라진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켕 또한 그것을 깨달았으리라. 2부가 초현실적으로 촬영된 것도, 이 모두 거짓이며, 허상이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음일 것이다. 2부를 공포영화로 만든 호랑이의 유령은 바로 켕 자신의 집착이다. 통의 기억에 대한 집착. 끊임없이 기억이 되풀이되는 정글 속에서, 시간조차 뒤엉킨 채 길을 잃고 고통받는 켕. 자신의 집착을 마주하고 나서야 켕은 단념하고, 통의 기억을 놓아준다. 호랑이 앞에서 그는 호흡을 멈춘다. 호랑이는 말한다. “보고 싶었다”


이 얼마나 슬픈 사랑 이야기인가. 2부의 켕은 죽었음이 확실하다. 죽음 앞에서야 그는 통의 기억을 놓아줄 수 있었다. 혹은, 죽음을 통해서만 통의 기억을 놓아줄 수 있었다. 그가 죽는 순간, 호랑이 유령이자 통은 그에게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다는 대사를 읊는다. 2부의 끝에서 호랑이에게 죽는 것은 켕이지만, 통의 기억들에 대한 집착을 버린 주체 또한 켕이다. 잊히는 것은 통이다. 켕의 죽음은 두 가지 방향으로 서로 역행한다. 호랑이의 마지막 대사는 잡아먹힐 군인 켕에게 건네는 애도의 대사이기도, 통의 기억을 완전히 잊고 나아갈 켕에게 건네는 마지막 작별 인사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단연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 영화다. 나는 지금 켕이 오토바이를 타며 듣던 음악을 듣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L24DtlDNuQ&list=PLUmpF0XXfyxZSWJ9FTyNYgI6NStXY6r0K&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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