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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hhhye Jul 18. 2023

너와 나의 밥상

2020.10.17




1) 나는 고기담당, 할머니는 채소담당


> 10년 정도 살다 보니 밥상 앞에서 할머니와 나는 환상의 짝꿍이 되었다. 콩밥이 밥상에 나오는 날이면 나는 콩을 골라 할머니 밥그릇에 놓는다. 국에 고기가 들어있는 날이면 할머니는 고기를 골라 내 국그릇에 놓는다. 서로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극히 반대이기에 가능했다. 처음엔 고기를 싫어하는 할머니가 이상하고 신기해 “할머니는 왜 고기가 싫어?”라고 자주 물어봤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그냥 웃고 넘겨버려 나는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가진 채 매일 할머니와 한 상에서 밥을 먹었다. 그러다 내가 치아교정을 막 시작하던 시기에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고기가 거리껴졌다. 잇몸이 약해지고 치아가 흔들리며 아프니 고기를 씹기도, 삼키기도 곤욕이었다. 그제야 나에게 있던 의문이 풀렸다. 할머니는 약한 치아와 틀니로 고기를 씹는 게 불편했던 것이다. 내가 그동안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는 할머니를 노인이 아닌 어른으로만 바라봤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어른이고, 어른은 뭐든 할 수 있는 강한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할머니가 보통 식구들이 하는 행동과  다른 행동을 하면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가 다 잘 먹으니깐 할머니도 잘 먹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바라보니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다. 다양한 반찬이 있어 우리의 젓가락이 바삐 움직일 때, 동치미 국물과 밥만 먹는 할머니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도, 항상 한 두 입씩 밥을 남기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던 이유였다. 그 후론 할머니가 좋아하는 걸  밥상에서 찾기 시작했고 그것은 콩이였다. 할머니는 콩을 제일 좋아하지만  나는 식감 때문에 콩을 싫어한다. 그래서 콩밥이 상에 나오는 날엔 할머니에게 콩을 덜어준다. 그리고 할머니 국에 있는 고기를 가져오며 엄마에겐 들리지 않도록  “할머니가 내 콩 먹어 주니까 내가 할머니 고기 먹어줄게”라고 말한다. 그렇게 할머니와 나의 작은 비밀이 생겼고, 작은 웃음이 밥상에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2) 빨간 음식은 매운 음식

  > 빨간 음식은 할머니의 기피 1호 음식이다. 조금만 빨개도 먹어보지도 않고 무작정 맵다 한다. 감자튀김에 케첩을 찍어주어도 빨간색이라 먹기 겁난다며 거절하곤 한다. 그래서 우리 집 상에는 맵기가 다른 같은 2가지의 국이 올라온다. 예를 들어 비지찌개를 끓였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우리의 찌개는 짭짤한 시뻘건 색을 띠지만, 할머니의 찌개는 싱겁고 하얗다. 서로의 찌개를 보며 무슨 맛을 먹냐며 신기해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서로의 찌개 맛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한 입씩 서로의 찌개를 먹으면 이걸 왜 먹지라는 생각이 더욱 강해지곤 한다.(정말 하얀 찌개는 맹맛이었다.) 그러다 가끔씩 서로의 맵기가 생각날 때가 있다. 가끔씩 밖에서 모든 끼니를 해결하고 집에 오는 날이면 맹숭맹숭한 음식이 먹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할머니의 찌개에 밥을 말아먹으면 그 갈증이 해소가 된다. 그 모습을 보는 할머니는 으이구하며 웃는다. 할머니 역시 입맛이 없을 때 우리가 저녁에 시켜 먹는 매운 치킨을 겁 없이 한 입 달라고 한다. 우리는 맵다며 말리지만 할머니는 괜찮다며 한 입만 달라고 한다. 그럼 할머니는 그 한 입을 먹고 혓바닥을 내밀며 물을 찾는다. 그 모습을 보며 다 같이 웃곤 한다. 저걸 무슨 맛으로 먹냐며 서로의 맵기가 다른 찌개를 보고 인상을 찡그리던 할머니와 내가 서로의 맵기를 찾는다는 건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과 노력이었다. 






3) 따뜻한 물과 얼음물

> 밥상을 차릴 때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이 있다. 포트기에 물을 끓이는 것이다. 물이 끓으면 할머니 컵에 미지근한 보리차 반, 뜨거운 물 반을 넣어 컵뚜껑을 닫아 할머니 옆에 놓아준다. 그리고 나는 곧장 정수기로 달려가 컵에 먼저 얼음을 넣고 시원한 물을 따른다. 각자의 물의 온도는 상극이지만, 맛있게 먹으라며 챙겨주는 우리의 온도는 항상 같았다. 다른 듯 같은 온도였다. 그래서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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