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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hhhye Dec 28. 2023

가방 속 소화제가 없다는 건,

특명 : 가장 가까운 약국을 찾아라





가방안쪽 작은 주머니에 항상
가방이 크면 불안한 마음이 작아지니


정말 잘 체한다. 식사 전 물 한 모금에 체한 것이 일주일이나 간 적도 있다. 그러니 성인이 되고 나서 외출 전 소화제를 챙기는 건 당연한 습관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필요할 때 바로 꺼내야 하기에 가방 안쪽 지퍼가 달린 작은 공간에 항상 보관해 둔다. 거기에 여분의 진통제까지 챙겼다면 세상 더 든든할 것이 따로 없었다. 그러다 가끔 외출 중에 가방 속 빈 각만 남은 소화제를 발견했다면 내 모든 시선과 집중은 근처 약국으로 향해진다. 얼른 약국을 찾아야 한다. 






진단받지 못한 진단서
알록달록한 약은 가끔 기분을 좋게 만든다


친구들, 식구들과 밥을 먹다가도 체하는 것을 봤을 때 결코 식사자리의 불편함이 내 소화불량의 원인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니 이것은 내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일 테다. 분명한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찾지 못했다. 그저 스트레스라는 단어만 잔뜩 담긴 진단서와 약만 여러 번 받았을 뿐. 오히려 소화제만 더 늘어버렸다. 스트레스라는 단어만큼 상황을 두리뭉실하게 넘길 수 있는 좋은 단어가 있을까. 피로와 스트레스로 가득 찬 내 진단서를 보니 속이 더 답답해졌다.






우리 나중에 보자
사람을 만난다는 것


이유 모를 소화불량을 달고산 다는 건 사람과의 만남에서 꽤나 큰 부담이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지인들과의 만남을 줄이고 숨기 바빴다. 친구들은 항상 서운함을 표했지만 내 속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니 약속 한 번 잡자는 친구의 카톡에 주저하는 나를 볼 때마다 내가 만났던 의사들이 괜히 미워지곤 했다.






나의 불안에 시비를 걸던 날
"죽지 않을 만큼 먹었을 거야. 살아있잖아"


어떤 날 자기 직전 나는 통에 남은 마지막 소화제 두 알을 먹고 빈 통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러다 문득 내가 한 해에 먹는 소화제가 몇 통이나 될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그 질문은 나의 불안에게 괜히 시비를 거는 셈이었고 나는 빠르게 궁금증을 구겨 버렸다. 죽지 않을 만큼 먹었으니 살아있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 밤을 보내줬다.





흰쌀밥이 무슨 잘못이겠니
언젠가는 남기지 않고 다 먹겠다 매번 다짐하는 김치볶음밥집


도대체 무엇이 내 속을 이리 꽉 막히게 하는 것일까. 뭐 음식이 주된 범인이겠지만 정녕 그게 전부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런 상상도 해봤다. 내가 뜬 밥 한술에는 쓸데없는 마음이 쌓여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걸 속에 욱여넣어 매번 탈이 났을 테고. 꽤 그럴싸한 상상이었다. 그래봤자 흰쌀밥과 찌개가 무슨 잘못일까. 소화하지 못한 내 잘못이지. 나는 올 해에도 명확하다 할 이유는 찾지 못했다. 아직도 내 속을 모르겠다. 그저 소화제가 여전히, 많이 필요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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