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hhhhye Mar 05. 2024

얘가 내 조카라구요?

그래 안.. 녕?




집안의 막내는 오직 난데


2005년의 내 모습

: 어릴 적부터 아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초등학생인 나에게 아기는 항상 울고 손이 많이 가는 이상한 생명체였을 뿐이다. 더 깊이 들어가 마음을 꺼내보자면 나보다 어린 사람이 있는 게 싫었다. 가뜩이나 작게 받는 이 사랑마저 저 아이에게 빼앗길까 봐. 그래서 나에게 아기는 반갑지 않은 존재였다. 나는 이 집안의 막내라는 타이틀을 지키기 위해 나보다 어린 생명체에겐 어떠한 관심도 주지 않았다. 그건 아마 초등학생인 나의 절절한 애씀이었을 테다.




나보다 어린 생명체가 태어났다.


2017년의 내 조카의 모습

: 초등학교 6학년 때 결국 나보다 어린 생명체가 이 집안에서 나타나버렸다. 가까이 지내는 사촌언니의 출산이었다. 이름은 안서윤. 태어난 직후의 유리창 건너로 본 너의 모습은 쭈글쭈글한 외계인과 같았다. 며칠 뒤 면회실에서 직접 아기를 볼 수 있었고 서윤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서야 네가 우리 집의 막내 타이틀을 가져가겠다는 생각이 들며 여태까지 나의 애씀이 댐 무너지듯 무너져버렸다. 다들 서윤이의 탄생에 기뻐했을 때 나 혼자 시무룩해있었다. 식구들의 웃음 섞인 대화 속에서 나의 귀는 철저하게 닫혀있었고 아무 무늬 없는 벽만 쳐다봤다. 그러자 언니가 나에게 서윤이를 안아보라며 나에게 안겨주었다. 그리고 언니는 "혜원이 이제 이모 됐네?"라고 말했다. 이모라는 말, 나이 들어 보여 싫었지만 생각보다 품에 안은 서윤이의 촉감은 나쁘지 않았다. 그래 네가 내 조카구나.





 나의 모든 사랑을 다 가져가렴.


식구에게 받아보는 첫 편지였다.

: 1,2살까진 관심이 없다 3살쯤부터 이 아이에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서윤이는 유독 나를 좋아했다. 어린 존재가 좋았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만 따라다녔다. 내가 학원에 갈 때면 가지 말라 펑펑 울정도였으니. 덜컹거리는 학원차 안에서 나를 이토록 좋아하는 식구가 생겼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너무나 기뻤다. 내가 너를 식구로 받아들인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나에게 쌓인 모든 사랑과 없는 사랑까지 한 털 빠짐없이 모아 너에게 주고 싶어졌다. 넌 나의 하나뿐인 조카니깐.





잘 놀아주는 이모가 되고 싶어서


저 포동한 볼살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 언니는 용무가 있을 때마다 우리 집에 서윤이를 맡겼다. 그럼 나는 서윤이의 전담 놀이사로 변신했다. 학생인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색칠공부, 종이 접기가 전부였다. 이마트에 있는 몇 만 원짜리 장난감을 사줄 수 없던 나의 최선이었다. 그러다 인터넷에 종이 도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빠에게 부탁하여 도안을 인쇄해 놓았다.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도안이었는데 서윤이에게 보여줄 생각에 설렜었다. 며칠 뒤 서윤이가 우리 집에 왔고 나는 자동차 도안을 자르고 붙여 서윤이에게 주었다. 서윤이는 눈이 동그래지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한 번 가지고 놀 장난감에 몇 만 원 주기보단 이렇게 종이로 한 번 놀고 버리는 게 훨씬 낫다며 옆에 있던 언니도 좋아했다. 그때부터 종이도안은 나의 핵심 놀이비법이 되었다. 아이와 함께 만들라며 무료로 도안을 만들어 풀어준 모든 분들에게 정말 감사했다.






그 사랑 다시 돌려주려고요.



어색하기만 한 중학생 서윤이


: 시간이 많이 지나 서윤이는 이제 중학생이 되었고 나는 20대 중반이 되었다. 어제가 서윤이의 중학교 첫 등교날이었다. 언니는 나에게 서윤이가 교복 입은 사진을 보내주었고 그 사진을 보니 잘 커준 서윤이가 대견할 뿐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서윤이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예전 사진첩을 찾아보았다. 내가 만들어준 자동차를 들고 웃고 있던 5살 서윤이의 모습이었다. "아 맞아, 저 때 종이 자르고 놀아줬었지"라는 생각에 얕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반짝한 호기심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다. 그 호기심은 디자인을 전공했고 모든 디자인 툴에 익숙해진 내가 전에 받았던 무료 도안의 감사한 마음을 이어가 무료 도안을 만들어 배포하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느껴본 깨끗하고 반짝이는 마음에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이름하여 받은 사랑 두 배로 돌려주기였다.






아무 대가 없이 놀이교구를 제공한다는 건,



열심히 운영 중인 인스타그램 츄즈다.

: 도안을 만들기 전에 먼저 아이들이 각 나이에 필요한 교육이나 지식을 공부한 후, 내 나름대로 발달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아이가 좋아할 것 같은 도안을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다. 10개 정도가 쌓여 저번주즈음 인스타그램을 개설하였다. 소개글과 콘텐츠, 하이라이트까지 채워 넣으니 구색이 어느 정도 갇혀진 기분이었다. 20대 중반 들어 느낀 가장 순수한 뿌듯함이었을 테다. 팔로워가 하나둘씩 생기는 재미도 있다. 하나의 부캐가 생긴 느낌이다. 매번 업무 뒤 책상에 앉아 도안을 만드는 건 꽤 피곤한 일이었지만, 받은 사랑을 돌려준다는 마음 하나가 금방 책상에 앉을 힘이 되어주었다. 세상 모든 서윤이들이 예쁘고 밝게 컸으면 좋겠다. 많은 걸 보고 만지고 느껴봤으면 좋겠다. 나와 같이 아이와 열심히 놀아주고 싶은 모든 분들이 왔으면 좋겠다. 아무 대가 없이 놀이교구를 제공한다는 건, 티 없이 맑은 사랑이었다.


놀이도안 구경하러 오세요 > https://www.instagram.com/chewz_kid/


작가의 이전글 2024 신춘문예 투고실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