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서울 생활 이야기]
7-5. 돈은 죄악이 아닌 아름다운 꽃
1998년, 서울로 이사 온 첫날,
회사로 향하던 아침.
7호선 건대입구역에서 환승하려고 내리는 순간,
사람들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고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건 단지,
”더 빠른 환승“을 위한 서울의 일상이었습니다.
서울은 그런 도시였습니다.
속도를 삶의 기본값으로 삼는 도시.
그리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저도 모르게 그들과 함께 뛰고 있었습니다.
상계동 집에서 논현동 회사까지의 출근길은 결코 짧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아직 7호선이 강남구청까지 연결되기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노원역에서 7호선을 타고, 건대 입구에서 내려서 2호선으로 갈아탄 후,
선릉역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출근했습니다.
매일 반복되던 이 긴 여정은
서울살이의 리듬이자, 도시가 내게 가르쳐준 첫 번째 교과서였습니다.
서울에 사는 동안 세 번의 이사를 했습니다.
2년마다 찾아오는 전세 만료, 그리고 집주인의 퇴거 요청.
집 없는 설움, 돈 없는 설움, 그때 처음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신혼 초, 회사에서 전세 계약서만 제출하면 무이자로 3,000만 원 전세 자금을 지원해 줬습니다.
당시 은행 금리를 고려하면 매달 월급 절반에 해당하는 이자가 생기는 큰돈이었지만, 저는 그 지원을 받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은 왜 받지 않느냐며 어리석다고 핀잔을 주었지만,
그땐 ‘돈은 죄악’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부정한 돈은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고,
현장에 만연한 기성검사비, 월례비 같은 관행도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그 일로 상사에게 욕도 먹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시공업체 현장 소장님, 현장 대리님들과 함께 매월 1만 원씩 모아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헌혈도 하며, 작은 선행을 실천했습니다.
서울이라는 도시 속에 살면서 돈에 대한 가치관도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돈은 죄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때론 사람을 살리고, 사랑을 표현하고,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었습니다.
서울에서의 6년은,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이 말한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 “라는 문장을 가슴에 새기게 만든 시간이었습니다.
그 꽃은 욕심으로 피우는 것이 아니라
정직함과 사랑이라는 햇빛 아래서 피어난다는 것을 나는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서울은 저를 많이 바꿔놓았습니다.
빠르게 걷게 만들었고, 더 치열하게 살게 했고, 무엇이 소중한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세 번이나 이삿짐을 쌌던 시간,
매번 짐 속에는 괴로움도 있었지만, 신념을 지키려 했던 작은 용기와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도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돌아봐도, 그 시절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습니다.
서울은 나에게 많은 것을 빼앗아 갔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