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전기인 이야기 - 17

[8. 전주 생활 이야기]

by 종구라기

8-1. 우수 감독원 표창


2004년, 전북으로 발령을 받아 군산 동흥남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명문인 군산고등학교와 인접한 탓에, 소음과 먼지로 인한 민원이 끊이지 않았지만, 학교와 주변 빌라 등 입주민에게 이해를 구하며 최선을 다했고, 다행히 무사히 준공과 입주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수능 모의고사일과 수능 일에는 더욱 조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그 후 전주 인후동 인후 농원 아파트 현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입사 후 처음으로 전주에서 일하게 되었지만, 주변에 단독주택과 교회가 많아 민원은 더욱 빈번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교회와의 갈등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공사 피해에 대한 협의와 보상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은 일반인도 쓰지 않을 거친 언행을 쏟아냈고, 선배 직원 한 분과 격한 말다툼까지 벌어졌습니다.
그 선배는 원래 신앙심 깊은 분이었습니다. 중고등부 회장을 맡아 교회에 헌신했지만, 부모님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사들에게 차별을 겪으며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 선배가 다시 교회로 돌아오기를 기도해 왔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부부와 갈등이 벌어졌을 때,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공사로 인한 피해는 보상해야 마땅했지만,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사랑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은 참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하나 해결되었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금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같이 일을 하는 전기공사업체 소장은 경험도 많고 유능하였습니다.

우리는 타 현장의 우수 시공사례를 참고하고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였으며, 타 공종과의 협업과 양질 시공을 하였고, 수급업체 본사의 지원까지 더해지며 무리 없이 준공과 입주를 마쳤습니다.

그 결과, 2009년 전주 인후 농원 아파트 전기공사는 품질 우수 현장으로 선정되었고,

나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사장님으로부터 양질 시공 기여 유공직원 상장을 받았습니다.

현장의 성과보다 더 값진 보상은, 그 과정을 함께 이겨낸 동료애와 성취감이었습니다.


현장 인근에는 작은 스포츠센터가 있었습니다.
용기 없어 오랫동안 망설였던 나는, 그곳에서 마침내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새벽 수영장을 찾았고, 운동 후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현장으로 출근했습니다.

처음엔 물에 뜨지도 못했고, 발차기를 해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수영에 소질이 없나 보다" 싶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매일같이 물에 들어갔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몸이 물에 뜨기 시작했고, 자세가 안정되었으며, 점점 속도도 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타고난 재능보다 중요한 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성실함이다."

지금은 10년 넘게 수영을 즐기고 있습니다.
접영, 배영, 평영, 자유형은 물론, 다이빙과 잠영까지 자유자재로 즐깁니다.
접영과 잠영은 25미터를 숨 쉬지 않고 나아갈 수 있고,
자유형은 1,000미터 이상을 멈추지 않고 즐기고 있습니다.


몇 해 전, 친구들과 보라카이 여행을 갔을 때였습니다.
가이드에게 부탁해 넓은 바다에서 다이빙을 해보았습니다.
물속으로 뛰어드는 그 순간, 나는 내 안의 두려움과 한계를 함께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은 영상으로 남겨져, 지금도 내 카카오톡 프로필 영상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건 단순한 여행 영상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겨낸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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