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전기인 이야기 - 19

[9. 천안 논산 생활 이야기]

by 종구라기

하자보수 TF팀과 첫 주말부부


2012년, 나는 대전충남본부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근무 부서는 ‘천안권 주거복지사업소’.

처음으로 천안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전주에서 매일 출퇴근하기엔 거리와 피로가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입사 이후 처음으로 주말부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제주, 서울, 전주 등으로 이사를 다니며 가족과 늘 함께했습니다.

아내는 전업주부였고, 아이들도 아직 어린 초등학생이었기에 함께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아내는 학원 강사와 기간제 교사로 일을 시작했고, 아이들도 중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나는 혼자 천안으로 향했고, 회사에서 마련한 숙소에서 주중을 보내며, 주말마다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사업소 관할 지역인 아산배방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지하주차장 바닥에 물이 차오르는 하자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은 권○○ 장관이었고, 아산 지역 국회의원은 이○○ 의원이었습니다.

지역구 내 아파트에서 하자가 발생하자, 국회의원은 장관에게 압력을 넣었고, 국토부에서 아산배방ㅇㅇ단지 하자 보수 TF가 조직되었습니다.

우리 회사도 급히 TF를 꾸렸고, 본사에서 본부장, 처장, 부장, 차장 등 주요 인력과 함께 각 공종별 전문가들이 투입되었습니다.

나는 전기 분야를 대표해 현장에 배치되었습니다.

국토부 장관의 관심 사항이 된 만큼, 우리 회사 사장님도 현장을 찾아 입주자들과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사장님은 "매주 제가 직접 와서 챙기겠습니다"라고 입주민들과 약속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그 후 사장님은 다시 오시지 않았고, 그 약속은 주택건설담당 이사님이 대신 지켜주셨습니다.

이사님은 매주 현장을 찾아 직원들을 격려하고, 입주민들과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우리는 아파트 인근 땅을 임시 주차장으로 확보하고, 지하주차장을 다 걷어내고 방수판을 새로 깔고 전면 방수 공사를 다시 했습니다. 입주민들에게는 보상도 이뤄졌습니다.

하자 보수 TF 팀은 토요일, 일요일 가리지 않고 돌아가며 근무했고, 입주민 설명회는 밤 12시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민원은 날카로웠고, 공사는 까다로웠지만 TF 팀은 묵묵히 해냈습니다.


그렇게 1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나는 다시 원 소속부서로 복귀했습니다.

고생이 많았지만, 매주 현장에 찾아와 주시던 이사님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고, 어려운 순간마다 곁을 지켜준 TF 팀 동료들 덕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주위에 좋은 사람이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이런 노고를 인정받아, 다음 해에는 전주에서 가장 가까운 현장인 논산 내동 현장으로 발령을 요청했고, 다행히 논산 현장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논산 내동 현장은 택지개발지구이며 여러 단지의 주택건설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우리 직원들이 직접 전기공사, 정보통신공사, 소방공사 감리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소방공사 감리는 현장에 중복 배치가 허용되지 않았고, 소방감리 자격이 있는 우리 직원이 부족하여 감리업체에 소방공사감리용역을 맡겼습니다.

논산 내동 1공구 현장에 배치된 소방감리원은 직장에서 정년퇴직 후, 일을 하기 위해 소방감리를 하는 분이었습니다.

소방공사 준공을 위해서는 소방서로부터 소방완공필증을 발급받아야 했습니다.

필증을 위해서는 감리원이 모든 소방설비 시공상태와 작동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관할 소방서에 감리결과보고서를 제출하면 소방서에서 확인 후 발급을 합니다.

그런데 논산소방서의 심사는 매우 까다로웠고, 감리원이 소방서를 수십 번 방문해야 했습니다.

준공일은 다가오는데 소방완공필증이 나오지 않자, 감리원은 소방서에 찾아가서

"퇴직 후,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하는데 소방서 때문에 못살겠다. 자살하고 싶다."라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당시 자살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기에, 다음날 소방서로부터 "소방완공필증을 찾아가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2013년, 나는 다시 집에서 출퇴근하는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해 봄, 전주에서 논산까지 달리는 길이 어쩐지 더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삶이 조금 덜 고단해져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남은 믿음과 감사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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