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전주 생활 이야기]
10-1. 발주자 직접 시공 시범현장
2014년, 다시 전북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전주와 완주에 걸쳐 있는 전북혁신도시 사업단에서 공동 주택 건설업무 맡으며 새롭게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혁신도시 현장은 택지 개발과 공동주택 건설이 병행되는 복합 프로젝트였습니다.
보통 아파트 건설 현장은 발주자가 수급업체를 선정하고, 수급업체가 하도급업체와 계약하여 공사를 진행합니다.
우리는 그 과정을 감리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하지만 전북혁신도시에서는 그 틀을 깨는 시범사업이 있었습니다.
수급업체를 거치지 않고, 발주자가 직접 하도급 업체를 선정해 공사를 시공하는 ‘직접 시공’ 방식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기대가 컸습니다.
중간 단계가 줄어드니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직접 시공은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엄청난 업무 부담을 의미했습니다.
하도급 업체 관리부터 자재 구매, 양질 시공 등 모든 책임이 발주자에게 쏠렸습니다.
계약직 직원들을 다수 채용해 대응했지만, 효율성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결국 ‘원가 절감’이라는 목표는 기대에 못 미쳤고, 이 시범사업은 조용히 막을 내렸습니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또 하나의 기억이 있습니다.
바로 일부 전선이 물에 노출되면 절연이 파괴되는 전국적인 하자 문제.
아파트 세대 내 전등과 전열 회로에 HFIX라는 전선을 사용했습니다.
저독성 난연폴리올레핀 절연전선입니다.
하지만 2013년경, 특정 회사에서 생산한 HFIX 전선에서 절연 파괴 현상이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장시간 습기에 노출되면 전선의 절연이 약해져 합선 위험이 생기는 치명적인 하자였습니다.
전국적으로 비상이 걸렸습니다.
전국 현장을 대상으로 특정 회사의 해당 기간 제품 사용 여부를 조사했고,
아직 입주하지 않은 세대는 HIV 전선 등으로 전면 교체했습니다.
이미 입주한 세대는 입주자와 일정을 조율해 교체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작업은 2인 1조로 이뤄졌으며, 가구를 옮기고, 냉장고를 밀어내고, 벽 속 배관을 따라 전선을 끌어내야 했습니다.
쉽게 빠지지 않아 낑낑대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교체할 수 있는 세대는 평균 2~3 가구에 불과했습니다.
혁신 ㅇㅇ단지의 사례입니다.
입주 초기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몇 개월이 지나자 서서히 하자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1~2세대였지만, 곧 여러 세대의 하자가 접수되었습니다.
처음엔 수급업체가 하자 보수를 진행했지만, 하자 보수 기간이 끝났다며 책임을 회피했고, 관리소에서 대응하다가 결국 하자 보수 소송으로 이어졌습니다.
건축이란 단지 시공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과 신뢰의 영역임을 다시금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혁신도시에서의 시간은
시스템 실험의 실패, 전국을 멈춘 하자 대응, 하루 3세대도 버거운 작업,
그리고 책임의 무게로 기억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건설이라는 일이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이라는 걸 가슴 깊이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