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전기인 이야기 - 25

[12. 전주 생활 이야기]

by 종구라기

12-4. 기술자의 양심


아파트 한 채를 완성하는 데에는 수많은 사람의 손과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중에서도 전기 및 정보통신공사는 사람들에게 편리함과 안전을 제공하는 핵심 뼈대입니다.

그러나 그 뼈대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필요합니다.

바로 '양심'입니다.


1990년대, 내가 근무하던 ㅇㅇ현장의 일입니다.

전기 및 통신공사의 하도급은 법적으로 엄격히 제한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배관공사, 배선공사, 기구 설치공사를 공정별로 분리하여 다른 팀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문제는, 이 ‘분리된 책임’ 속에서 누구도 전체를 책임지지 않으려는 분위기였습니다.


어느 날,

배관 공사팀이 일정 구간의 배관 작업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그중 일부 구간에 배관이 막혀버렸습니다.

(그 시절에는 안타깝게도, 철근 공이나 콘크리트 타설 공에게 돈이나 막걸리 등을 상납하지 않으면 배관에 고의로 이물질을 넣는 악습도 있었습니다.)

그 이후 배선 공사팀이 들어왔습니다.

배관이 막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그 구간을 생략하고 배선 작업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구 설치팀은 문제의 구간을 모른 채 조명기구를 설치했습니다.

준공을 앞두고 조명기구 작동 시험을 하는데, 일부 조명이 켜지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단순한 기구 불량이라 생각하고 기구를 교체했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결국, 의심스러워 전선을 잡아당겨보니…

중간에 배선이 아예 없는 상태로 ‘쏙’ 빠져나왔습니다.

이미 건축 마감과 도장 공사가 완료된 상태였습니다.

책임자인 전기 소장은 다시 배관을 까고 배선 공사를 보완해야 했고,

건축팀은 미장과 도장 공사를 다시 해야 했습니다.

이 모든 시간과 비용, 그리고 불필요한 갈등은 단 한 사람의 무책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기술자의 손끝이 아무리 능숙하다 해도,

그 손이 '양심'을 거치지 않으면 현장은 반드시 흔들립니다.

특히 건설 현장처럼 여러 공정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곳에서는

'내 일만 하면 된다'는 태도는 전체를 무너뜨리는 첫 단추가 됩니다.

건설은 단순히 벽돌을 쌓는 일이 아닙니다.

그 공간은 누군가의 가정이 되고, 삶이 되는 공간입니다.

전등 스위치를 켰을 때 조명이 들어오고, 비상시에 방송이 작동하고, 인터폰이 연결되는 것.

이 모든 것 뒤엔 보이지 않는 책임감과 양심이 작동하고 있어야 합니다.

법과 기준이 아무리 정교해도

현장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태도입니다.

기술은 시대와 함께 진보합니다.

하지만 양심은 지금도,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누군가의 생활’을 짓고 있다는 마음으로

조금 더 정직하게, 조금 더 책임 있게 일한다면,

건설 현장은 지금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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