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전기인 이야기 - 26

[13. 인천 생활 이야기]

by 종구라기

13-1. 군부대 현장


전주에서의 짧은 3년을 마치고, 뜻밖에도 다시 인천본부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제주, 서울, 천안, 인천

34년 직장 생활 동안 나는 한 번도 인사명령에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명령이 떨어지면 묵묵히 받아들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따르기만 하던 나에게 동기생이 조언을 해줬습니다.

“나는 인사처에 자주 전화해. 너도 한 번 해봐.”

처음엔 망설였지만, 그 말이 용기를 줬습니다.

입사 34년 만에 처음으로 인사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왜 인천본부로 발령이 났는지,

대전충남본부로 명령받은 직원과 서로 바꿀 수는 없는지,

내년이면 임금피크인데 그때는 전북으로 갈 수 있는지 등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인사담당자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승진을 하면 전보 인사가 원칙이기에, 승진 후 전보 인사입니다.

그리고 서로 바꾸는 것도 여의치 않습니다.

대신 임금피크가 되면 최대한 고향 근무를 반영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마음을 다시 잡았습니다.

“그래, 1년만 열심히 하자.”


인천본부에서 다시 본부 직할 검단사업단으로 배치되었습니다.

사무실은 인천 서구 원당동, 숙소는 김포 풍무동,

차로 10분 거리였습니다.

숙소는 김포공항이 가까워 비행기 소음이 심했고 창문이 자주 떨렸습니다.

내 하루는 이랬습니다.

새벽 6시 기상, 헬스장에서 운동, 조식 후 업무 시작, 저녁 식사 후 야근,

밤 10시 취침. 정돈된 하루였습니다.

우리 부서엔 임금피크 중인 선배, 나, 입사 4년 차 후배, 그리고 기간제 직원까지 총 4명이 전기와 정보통신 업무를 맡아 처리했습니다.

8개 아파트 공구와 4개 군부대 현장을 담당했습니다.


군부대 현장은 내게도 처음이었습니다.

출입 전날까지 군부대에 인적 사항과 출입 목적 등 출입신청을 하고,

휴대폰엔 보안 앱을 설치해 사진촬영을 막았습니다.

차량 블랙박스는 덮개로 가렸고, 어떤 장비도 허가 없이 켤 수 없었습니다.


군부대 현장은 기부채납과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합니다.

기부채납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기반 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사업 시행자로부터 무상으로 재산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며, 기부 대 양여는 사업시행자가 새로운 토지에 국방, 군사시설을 설치하여 기부채납하고, 기존 국방, 군사시설이 있던 토지는 용도폐지하여 사업시행자에게 양여하는 사업 방식입니다.

전주 35사단 이전 사업, 창원 39사단 이전 사업 등 군부대 이전사업은 기부 대 양여 방식을 많이 추진하였습니다.

군부대와의 협의를 거쳐 설계를 하고, 시공 도중에도 수시로 도면이 수정되기도 하며, 준공 및 인수인계까지 끊임없는 조율이 필요했습니다.


현장 감리원 중 몇 분은 예비역 군인이었습니다.

내가 함께 일했던 감리원은 육군 중령 출신,

그리고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공군 대령 출신이 계셨습니다.

그 공군 대령 출신 감리원은 말수가 적었지만, 가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ㅇㅇ 공수여단장 시절,

우리 사관생도들이 그 부대에서 구보를 하다가 동기생 하나가 쓰러져서 끝내 못 돌아온 적도 있었지요...”

국방 TV나 뉴스에서는 듣지 못할 군 시절의 이야기들이 그의 입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돌이켜보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천 발령 덕분에

나는 군부대 현장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고,

예비역 장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왜, 하필 내가?”로 시작했던 이 발령이 시간이 지날수록

“그래서 다행이다”로 바뀌었습니다.

예상 밖의 길에서, 예기치 못한 배움이 온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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