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전주 생활 이야기]
12-1. 반쪽 기술자와 인허가.
2019년, 인천에서의 1년 근무를 마친 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전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퇴직을 앞둔 직원들을 위해 사장님의 배려가 있었다고 합니다.
“회사에 청춘을 바쳤는데, 고생한 만큼 집 근처에서 마지막 근무를 하도록 해주자.”
그 따뜻한 말이 제 마음을 적셨습니다.
저는 신입사원 시절부터 오랫동안 직접 감리감독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책임감리 제도가 도입되었고, 발주처는 감리용역업체를 선정하여 감리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감리자가 공정관리, 품질관리, 안전관리 등 공사 전반을 감리 업무를 수행하며, 우리는 공사관리관으로 기성금 지급, 공사기간 조정 등 '돈과 책임'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직접 감독할 때에는 스스로를 ‘반쪽 기술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배관공사, 배선공사, 기구취부공사를 하고 시운전 및 하자처리까지 해봐야 비로소 완전한 기술자가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직접 시공은 하지는 않고, 도면을 숙지하고, 시공계획서를 검토하고, 시공 과정을 지켜보고, 시공 부분을 검수하기에, 공사 흐름 전체는 알고 있지만 직접 시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감리가 그 ‘반쪽 기술자’ 역할을 하기에 공사관리관은 ‘반의 반쪽 기술자’ 느낌이 듭니다.
공사가 시작되면, 저는 현장의 수급업체 대리인과 감리원에게 몇 가지를 꼭 당부합니다.
“도면을 믿지 마십시오.
사람이 그리는 것이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시방서, 설계 지침, 설계 계산서, 건축·기계·조경 도면까지 입체적으로 확인하여 시공 전에 미리 오류를 찾아야 사고를 막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ㅇㅇ 현장에선 엑셀로 작성된 변압기 용량 산정표에 세대수 일부가 누락되어 변압기 용량이 작게 계산된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변압기가 현장에 반입 전이라 용량을 다시 산정하여, 적정 용량의 변압기를 반입하였습니다.
사고는 방심 속에서 시작되고, 예방은 의심과 검토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건설 현장에서 가장 복잡한 절차 중 하나는 인허가입니다.
사업승인을 받기 위해 도면과 계획서를 관청에 제출하면,
지자체, 소방서, 전기안전공사, 정보통신 협회 등 여러 기관이 의견을 제출하고 그 결과로 '사업승인 조건'이 부여됩니다.
이 조건은, 단순한 참고사항이 아니라 '지켜야 할 법적 의무'입니다.
하지만 어떤 감리원은 이 조건을 자신의 경험대로 자의 해석하여
설치를 생략하게 했고, 준공 직전에서야 이 사실이 드러나 어렵게 보완공사를 하며 진땀을 뺐습니다.
또 다른 현장에선 초고속 정보통신 건물 인증 기준이 바뀌었는데, 정보통신 소장이 이 사실을 간과한 채 공사를 진행하여, 준공 단계에서 뒤늦게 인증을 받느라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였습니다.
전기, 정보통신, 소방공사의 인허가는 종류도 다양합니다.
전기공사계획신고 (전기안전공사)
전기 사용신청 (한전)
전기안전관리자 선임신고 (전기기술인 협회)
전기 사용 전 검사 (전기안전공사사)
승강기 완성검사 (승강기안전공단)
소방설비 신고 및 완료 신고 (소방서)
정보통신 사용 전 검사 (지자체)
초고속 정보통신 건물 인증 (정보통신진흥 협회) 등
그 하나라도 빠지면, 준공은 물론, 입주 자체가 지연될 수 있습니다.
퇴직을 앞둔 지금,
저는 후배들에게 실수 없는 감리 감독의 길을 전하고 싶습니다.
‘문서에 쓰인 대로만 하면 되겠지’라는 안일함이 얼마나 큰 비용과 혼란으로 되돌아오는지를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문서를 믿지 말고, 사람의 실수를 의심하라. 그리고 모든 걸 한 번 더 확인하라.’
이것이 제가 남길 수 있는 선배 기술자로서 경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