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레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것 중 하나는, 거울을 보는 일이다. 얼굴과 몸 전체를 훑어보거나 확인하기 위함이라기보다 내 눈, 그리고 눈동자의 안부를 묻기 위함이다. 살면서 느낀 점은 눈이 말해주는 것이 크다는 것, 내 마음이 지옥일 땐 내 눈 역시 어둡다. 내 마음이 환할 땐 초롱초롱하게 맑게 영롱하게 빛난다.
세상만사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었다지만 나는 이렇게 매일 아침 거울을 통해 내 눈을 들여다보고 내 눈과 눈동자라는 렌즈를 통해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고 확인하고 내 안의 나의 건강을 체크한다.
파리 살 땐 매일 같이 미술관을 드나들었는데, 3구에 살았던 덕분에 웬만한 파리 시내 미술관은 집에서 10분 내지 15분, 20분 거리면 닿았다. 루브르 박물관을 지나다, 휘볼리 길을 걷다 작은 미술관에서 바자 잡지사의 옛 커버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우연히 들어가 본 그곳에서 입 생 로헝의 눈. 사진을 보게 됐고 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 강렬함 이상의 그 무언가를 느꼈다. 그때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사람의 눈.이 가지는 묘한 그 무언가. 눈은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
그래서인지 지금은 사람을 볼 때 가장 먼저 보는 게 그 사람의 눈동자다. 눈빛이 탁하거나 흐린 사람을 경계하는 편이며 나와는 기운이랄까. 에너지가 맞지 않는달까. 무튼 눈빛이 맑고 빛나는 사람에게서 큰 매력을 느끼고 호감을 갖는다.
가끔, 어린 아이들의 눈동자처럼 순수하고 맑은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을 보게라도 되면 기분 좋아지고 반갑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내면도 분명 맑은 사람일 거라는, 따뜻한 사람 임에 틀림 없을 거라고 믿는 편이며 실제 대화를 나눠도 자신만의 분위기와 아우라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확신조차 경계하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상 눈의 맑음과 빛.이라는 게 그 사람의 내면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떨 땐 눈에서 그 사람의 삶이 읽혀진달까. 눈을 통해 그 사람이 해석될 때면 눈이 갖는 신비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외모 중에서도 어쩌면 우리가 가장 신경써야 할 부분이 눈. 바로 눈동자.가 아닐까. 눈이 아름다운 사람이 진짜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눈이 맑은 사람, 눈에서 빛이 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은 늘 현재 진행형이다. 나이 들어가며 느끼는 건, 지금은 이십대의 발랄함과 생기에서 오는, 그 자체 젊음이라는 기운에서 오는 아름다움은 조금씩 소멸돼 미미해졌지만, 그에 못지 않은 성숙함이라는 이름으로 외모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차분해지고 무심해지고 단출해진 날 볼 때면 진화된 젊음이랄까. 지금의 아름다움과 분위기가 나는 훨씬 마음에 든다.
지금은 외적인 예쁨과 멋짐을 가진 남녀보다 내면에서 풍겨오는 세련됨, 클래시함, 섹시함을 가진 사람들을 볼 때 환호하고 설렌다. 이런 생각은 나 스스로를 깨어있게 한다.
생각이 젊어지고 세련돼지면, 그런 생각과 태도와 가치관과 철학이 고스란히 몸에 내재화되고 내면화돼 그 사람의 외면과 기가막힌 밸런스를 맞추게 되고 아우라.가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아우라란,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독특한 분위기, 취향, 개성, 아름다움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늘 그렇듯 나는 아우라란,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로 추상적인 말로 대체하곤 한다. 그마만큼 무형의 에너지, 기운이라고 생각하는 탓이 크다.
추적추적 비내리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키보드로 손을 옮겼고 어쩌다가 눈.에 꽂혔는지 모르겠는, 오늘도 어김없이 별 거 아닌 것에 사유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비가 오는 날에 유난히 기분이 째지는 나로선, 비오는 날씨 덕분에 오늘 하루 기분이 째질 예정이다.
오늘의 내 눈동자는 맑음이었고 나름 영롱하게 빛났다. 어떤 상황에서건 눈동자의 아름다움만큼은 내 눈동자의 빛 만큼은 잃지 말자고. 늘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