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nerplate Jun 12. 2024

이름에 대한 질문을 받는 사람

몇 주 전 어느 자리에서 사람들은 내게 이름에 대해 물었다. "이름이 독특하세요." 어릴적부터 내 이름에 관한 질문을 받아와서인지 그것이 익숙하기도하고 내 이름이라서 그런지 전혀 낯설지 않은게 사실이다. 어떨 땐 내 이름이 그렇게 남다른가.라고 생각된다. 내 이름은 내 세대에서는 확실히 보기 드문, 레어한 이름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릴 적만해도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흔하지 않은 성 뒤에 붙는 초아.라는 이름은 확실히 눈에 띄는 것이었으리라고 인정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초아.라는 내  이름이 참 좋다. 그 인터뷰에서도 자신 있게  말했을 만큼 내 이름에 대한 애정이 있다. 게다가 내 이메일 주소까지 이름과 연결짓다보니 사람들은 내 이름을 차용한 개인 이메일 주소를 알게라도 되면 다들 하나같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는 말을 한다. 


아버지께서 총각이던 때, 결혼해서 딸을 낳으면 초아.라고 이름지어야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한자 이름까지 뜻까지 밝혀 메모지에 적어 두셨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아버지 사랑이 듬뿍 담긴 이름이라서 나름의 의미를 가진 이름이라서, 딸들 중에 둘째인 내가 그 이름을 갖게  돼서 아버지에게 감사하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이름 하나로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어릴적부터 이름 덕분에 나는 늘 주목받기 일쑤였고 긍정적인 기억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내 이름을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을수 없다고들 한다. 게다가 워낙 톡톡 튀는 성격에 이국적이고 독특한 외모까지 더해 내 이름을 말하면 사람들은 그래서인지 더욱 나.라는 사람을 이름처럼 톡톡 튀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혹시 예명이냐는 말을, 한글 이름이죠?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나는 큰 물 넘칠 초.에 우아할 아.라는 뜻의 한자 이름이 있다. 사실 내 이름이라 그런지 평소 살면서 크게 이름을 의식할 일이 없어서인지 이름에 대한 고찰을 깊게 해보지 못했는데 내 이름이 사람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낼 만한 이름일 수 있구나.라는 걸 언제부터인가 느끼게 됐다. 


이름이, 나를 감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기운이기도 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름이라는 단어가 주는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결코 가볍지 않은 그 무언가 임에는 틀림없다. 


분명한 것은, 이름이 곧 나.는 아니라는 점이다. 예전엔 내 이름? 내 이름이 그렇게 독특한가? 특이한가?라는 생각을 곧잘 하곤 했었따. 하도 이름에 대한 질문을 받아서인데 그때마다 내 이름? 이름이란 도대체 뭐지? 뭘까. 초아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지? 내가 초아인가?등등 다소 심오하긴 하지만 잠깐 동안은 혼란스러워했던 적도 있다. 


그때도 난, 내 이름이 분명 곧 내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고 이름이란, 물건에도 각 사물에도 사람들이 구별하기 수비게 소통되기 쉽게 이름이 붙여진 것처럼, 명명된 것처럼, 일종의 그런 것.이라고 치부했다. 이름이 독특하다고해서 개성있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도 그럴 것이라는 것과 그 이름이 가진 이미지라는 허상에 갇힐 것을 경계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외모 역시 피부도 까무잡잡하고 동양적인 미, 보통의 한국 여성들과 같은 이미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외적 분위기로 운명인건지 이름의 이미지와 찰턱같이 궁합이 맞아버리게 됐다. 


이름이 흔하지 않아서, 나름 개성 있어서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이름에 관한 크고 작은 질문을 받는 일이란 사실 내게 그리 성가신 일은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럴 때마다 초아.라는 이름을 가진 것에 감사하고 난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애써 힘들이지 않아도 이름 자체만으로도 사람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낼 수 있다는 건 사회적으로는 분명 큰 장점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최근 몇 주 사이 비슷한 질문을 여러 차례 받으면서 문득 내 이름에  대한 고찰이 하고 싶어졌던 것이다. 어디선가 사람도 이름 따라간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해석하기 나름이 아닐까. 내 경우를 생각해보면 이름과 성향과 성격과 외모가 기가 막히게 떨어지는 편에 속하는데, 한편으론 내 이름과 정해진 인연 혹은 운명일런지도 모르겠다. 


이름이 예쁘다는 이야기를 평소에도 자주 듣다보니, 나도 내 이름과 같이 외모도 마음도 예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도 곧잘 했던 것 같다. 이름 그 자체가 진짜 나.는 아니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에너지와 아우라를 전달하는 도구이기는 하다는 생각이다. 


서른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주변에서는 "초아답다"는 말을 자주 한다. 초아답다.라는 게 여러가지 의미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개성있고 너만의 매력있음.이란 단어와 같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기도 한다. 


요목조목 예뻐야지만이 예쁘겠는가. 결국 이름, 외모에서 풍기는 그 사람만의 특유의 고유한 분위기, 아우라, 카리스마, 목소리, 톤, 말투, 태도 등 그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형성되는 사람의 기운, 에너지로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 편이다. 


이름이 내 존재 그 자체는 아니지만, 될 수는 없지만 이름이 주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으며 이름도 이왕이면 나와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진짜 나와 기가막힌 조합이 될 수 있또록 얼마든지 가꾸고 닦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  이름이 초아여서, 나름 흔하지 않아서 그 마저도 감사하고 매력 있는 이름처럼 그 이름을 가진 나도 그와 같이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자 하는 소망도 늘 갖고 있다. 


감사하게도 지금의 나는, 날 둘러싼 그 모든 것에 감사해하며 살게 됐고 모든 형상에 대해 자연스레 물 흘러가듯 날 내려놓고 내맡기며 삶을 통찰하게 되었다.  내 이름, 내 성격, 나름 독특한 외모 등등 외적, 내적 그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집착하지도 부인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내려놓고 내게 흘러들어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알아차리고 겸허히 기꺼이 환영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지금 내게 드는 부정적인 감정이 곧 내가 아니다.라는 방식으로 나는 그렇게 진짜 나와 가짜 나를 구분하고 진짜 나를 순간순간 현존하려고 노력한다. 이름에 대한 질문을 늘 받는 것에 대한 나의 물음에서 시작된 내 의식의 흐름은 오늘도 기어이 그 끝은 내 삶에  대한 태도와 통찰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아무렴 어떠하리. 이러한 사유와 행위야말로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절대 가면 일 수 없는 내 순수의식의 정화와 발로 아니겠는가.싶다. 


이전 13화 고급스러운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