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 밤이 잦아졌다는 건, 분명 내 몸과 마음 상태가 비상사태라는 것이다. 즉각 알아차리지만 그러면 무엇하나. 이토록 무너지는 걸...할 때가 있다. 하루, 이틀... 신체 리듬이 매섭게 익숙해져간다. 분명 내 안의 불안과 두려움때문이겠다.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나의 이 불안이, 이 두려움이 도대체 무엇 때문인 건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하는 질문이다.
실체없는 것인지 알면서도 기어코 침잠하고 침수하고 만다. 3시간을 한걸음도 쉬지 않고 내리 걸었다. 정 아니 되겠다 싶을 땐 이렇게 해서라도, 이런 방식으로라도 내 몸을 혹사시켜서라도 나는 기어코 고삐를 바짝 잡는다. 정신줄을 살려낸다.
3시간을 그렇게 걷고 나면 좀 걷힌다. 개인다. 걷는 순간 직감한다. 살아나겠다.! 회복하겠다! 놀랍게도 이 세상이 다시금 아름다워 보인다. 마법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차가운 저녁 공기가 날 외롭지 않게 한다. 벗이 되어 함께 걷는다. 저녁 7시에 집에서 나와 10시까지 집앞 공원을 걸었다. 3시간이면 보통 2만보가 좀 넘는다. 갈수록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이 조금씩 더뎌지는 게 느껴지는데 그 불편함이 정지되었던 내 온 몸의 생체 에너지와 감각을 소생시킨다.
몸의 움직임과 자연은 날 살린다. 걷는 내내 주위는 온통 초록인데, 내 마음은 이토록 까만 밤이었는지. 요 며칠 새 또 다시 침잠해버린 나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이렇게 다시 일어날 거면서, 다 알면서... 이 소중한 시간에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거니... 나는 언젠가 죽는데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인데... 이따금씩 무너지는 네가 나는 안타까워... 다시 나아갈테지?"
유선 이어폰을 꼈다. 길게 늘어뜨린 하얀 이어폰 사이 점퍼 지퍼를 힘껏 위로 당긴다. 씩씩하게 걷겠다는 의지다. 걷다 보면 관찰할 수 있다. 실은 절로 드러나는 것일테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로 공원은 넘쳐난다. 사랑하는 연인들, 가족들, 친구들,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저마다의 이야기 꽃을 피우고 눈빛은 초롱초롱 별처럼 빛난다. 이어폰을 끼고 있어 알 순 없으나, 분명 사랑의 노래들이겠다.
걷는 길에 초등학교 2-3학년으로 돼 보이는 아이를 마주했다. 오른손엔 쓰레기 집게를 들었고 왼손엔 봉투를 들고 걸으며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상냥해보였는지 덕분에 절로 미소 짓게 되었다.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은 조금 전 내 마음과는 확실하게 대비되는 것이었다. 이내 이 분위기에 절로 녹아들어갔다. 절로 스며 들어갔다. 절로 젖게 되었다. 나 역시 하나가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캄캄한 밤에 있지 않았다.
그러면서 불쑥 내 안에 소리가 일었다. "지극히 인간적인, 이토록 인간적인, 상냥한, 친절한, 따뜻한..." 걷기를 사랑하는 이유도 내겐 이런 이유에서다. 걷는 순간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는 기적, 마법.
걷기는 끊임없이 질문하게 한다.
심장에 살이 차오를 때까지 걷는다. 심장에 살이 차오르지 않으면 멈추지 않는다. 살아야 하니까. 살아가야 하니까. 살아지는 것이니까. 그렇게 심장에 살이 차오르고나서야 멈춘다.
걷기를 사랑하는 것도 타고난 것일까.싶을 만큼 걷기에 진심이다. 걷고 나면 알게되는 것들이 이토록 많아서. 한참을 걷고 난 뒤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가벼움, 청량감이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준다.
잠시 주춤했던 새벽 재래시장에 다녀와야겠다. 이 글쓰기가 끝나고 홀로 이 새벽을 몇 시간 견디고 나면, 지켜내고 나면 동이 트겠지. 주섬주섬 채비를 하고 새벽시장에서 새벽을 여는 사람들을 마주해야지. 그들과 그 풍경에게서 나는 또 다시 살아갈 힘을 내겠지. 꼭 그러겠지.
양배추, 단호박, 청양고추, 아보카도... 장볼 것들을 정리한다. 삶은 이토록 단순한 것인데, 이토록 복잡한 것이 아닌데, 나는 왜 이토록 진지하게 되고 마는지. 침잠하게 되는 것일까. 이럴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거지... 애써 나 자신을 다독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을 걸어갈 것임을 아니까.
환기차 열어둔 창문을 열어놓곤 깜빡하고 닫지 않았는데, 이 새벽의 공기가 전혀 차지가 않다. 내 마음이 따뜻해져서일까.
지난 주 겨울 이불로 이불갈이를 했는데, 아직은 때가 아닌지. 이불이 내겐 너무 버겁게 느껴지는게 아닌가. 분명 요 며칠새 내 마음이 이 두터운 차렵이불만큼이나 무거워서 였겠지.싶다. 내 마음이 이토록 무겁고 버거우니 감당하기 어려우니 이불조차 이토록 버겁고 성가시게 느껴진 것이겠지.싶으니 무언가에 몹시 불편한 내 마음을 아주 천천히 들여다본다.
차렵이불을 잘 포개어 다시 넣어두었다. 얇은 이불을 다시 소환해 덮었다. 한결 나은 이 기분은 무어람. 깃털처럼 가벼운 이 무게감은 무엇이람. 당분간은 두꺼운 차렵이불은 넣어두기로 한다. 꼭 "너... 아직은 아닌 것 같아."라고 말하듯 했다.
서른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동안, 세월동안 무척이나 길을 잃고 방황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나 자신을 아는 일이. 내게만 이토록 혹독한 것일까.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던 걸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마흔이 성큼 다가온 지금 내게 그 시간은 필연이었음을.알게 되었다. 받아들이게 되었다. 수용하게 되었다. 이해하게 되었다. 방황하는 나도 나였음을 여전히 나는 방황하고 있음을 죽을 때까지 방황하게 될 것임을 나는 받아들이게 되었다.
방황으로 고독할 수 있었다.
고독은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을 내주었다.
고독으로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
고독은 삶이 되었고 내가 되었다.
이제는 안다. 방황은 고독하기 위함이었단 걸. 고독은 날 성장하기 위함이었단 걸. 성장은 자기 자신으로 가는 여정에 나침반이 되어준다는 걸.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는 자기 자신이 되기로 한다. 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