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이래야만 했니?"... 노트북에 손을 대자마자 제목과는 상관없는, 문장하나.
애써 해석하지도 의미두려하지도 않는다. 절로 이는 내 안의 소리에 대해서는 특히나.
도통 며칠 째 새벽녘 눈이 멀똥멀똥 떠있다. 잠들지 못하는 걸까? 잠들지 않는 걸까? 무엇이 날 잠들지 못하게 하는가? 숙면만은 놓치고 싶지 않은 터라, 기어코 지고 마는 이 불면의 밤이 그리 반갑지는 않다. 애석할만큼 안타깝고 속상하다.
잠이 오면 오는대로, 잠이 오면 오지 않는대로... 이런 날이면 실은 딱히 대안이 없다. 생각을 내가 원하는 대로 끊을 수는 없는 것이니,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옛다ㅡ 네 마음대로 해!." 퉁명스럽게 말한다.
이 불면의 밤이 지나면 새벽 5시 30분에서 6시 사이 패딩을 입고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집 앞 공원을 걸을테지. 더 이상 무너지면 안된다.는 몸과 마음을 영민하게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침대에서 일어난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노트북을 켠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언제까지 이 노트북을 갖고 다니게 될까? 마흔이 넘고 쉰이 넘어서도 그럴까?" 어떨 땐 꽤나 짐스럽고 무거울 때가 있는데, 언제든 글쓰기가 하고 싶으면 쓰는 것이 내게 어느 면에서든 유리하니까 유익하니까 혹시 몰라.하고선 들고 다닌다.
작고 가벼운 아이 패드를 살 법도 하지만, 지금 몇 년째 사용하고 있는 노트북이 멀쩡하다는 것. 대학생 땐, 들고 다니기에도 용이했던 넷북을 들고 다녔는데 이 시점에 넷북의 추억이 떠오르는 건 무어람. 역시나 생각이란 이토록 무작위하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란 걸 실감한다.
광화문 어느 카페에서 넷북을 켠 채로 어떻게 하면 나를 궁금해 할만한 자소서를 쓸까.에 골몰하면서 자소서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던 대학생 초아. 그렇게 젊음의 총기 가득한 그 시절의 내가 보였다.
청계천 앞에 있는 커피빈 2층 창가에 앉아 통창너머 청계천과 지나가는 사람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높은 빌딩 사이 그리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낭만을 노래했던 열정 가득했던 나날들... 옆에 나란히 앉아 창가 너머 풍경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던 꽤 오래 전, 전 남자친구와의 기억도 소환됐다.
그 시절의 나도 나였고 지금의 나도 나인 것처럼. 스무살의 초아도 시절인연처럼 그렇게 스러져 가는 것들 중 하나였다. 그러니 아쉬워 할 것도 그리워할 것도 없다. 그저 그 시절이 있었음에, 그 시절을 이토록 아름답게 소중하게 추억할 수 있음에, 그 시절의 나 그리고 지나간 인연들, 풍경들에 감사할 뿐이다.
실은 이 밤 글쓰기를 할 생각이 없었다. 도통 내 안에서 어지러운 생각들에 휩싸여 몸과 마음이 마모되어가는 흐름 속에 내맡겨 있는 상태였을 뿐. 그러다 끝내 눈물을 한 트럭 쏟아내고야 말았다. 이 얼마만인가. 이토록 펑펑 울어본 적이.
눈물의 방문이었다. 그 소리가 재갈을 물려야만 될 것 같이 운 적이 살면서 몇 있는데, 그때마다 옷깃을 갖다대 재갈 대신 인정사정없이 그렇게 한참을 울었었다. 내 방에서 홀로. 오로지 나뿐이었다. 몇 울었던 기억들을 제외하곤 보통은 눈물을 잘 흘리지 않게 되었는데, 실은 슬픔을, 눈물을 꾸역꾸역 삼킨 것이겠다. 참은 것이겠다.
그렇게 한바탕 이 새벽에 눈물을 개워내고 나자, 남아있는 슬픔마저 꿀꺽 다 삼켜버리자 살 것 같았다. 정화된 기분에, 생기돋는 기분에, 잘 울었다 싶고... 눈물을ㅡ 울음을 끊어내진 몇 분 새 나는 다시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안정이 되었다 싶으니, 절로 노트북으로 손이 가는 건 무엇. 아마도 이 감정을, 이 새벽녘을, 모두가 잠든 밤 불면의 밤 속에서 이토록 울을 수 밖에 없었던 감정들을 기록하고 싶었던 것일테지.
몇 년 만에 마주한 울음은 엄청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날 울게한 어떤 치명적인 것은 없었으나, 그동안 쌓여왔던, 눌러왔던 내 안의 잠재의식에서, 무의식이 현현된 것이 아닐까.하는 짐작정도.
내려놓은 줄 알았는데, 굉장히 많이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지난 상처의 몇 조각들이 갑자기 파도처럼 밀려오면서 일으킨 것이었다. 이렇게 또 다시 알게 된다. 이렇게 운 것도, 슬퍼진 것도 다 이유가 있겠지. 상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란 걸. 결코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걸. 단, 나 자신을 위해서 내적인 수양으로 그 상처가 날 성가시게 하지 않도록, 치명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그저 바라봐주는 것.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도.
또 다시 이렇게 상처가 바다 위로 떠오르면 둥둥 떠다니게 내버려두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나는 내게서 올라오는 슬픔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신묘한 감정들을 피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인정했고 날 잠식하게 뒀다. 눈물의 방문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지 않았더니 이토록 맑은 기분이 선물이 되어 찾아왔다.
울면서도 알게 된다. 슬퍼하면서도 알게 된다. 눈물을 내 손등으로 직접 닦으면서도 절로 알게 된다. 슬픔과 눈물의 방문 뒤엔 개운함, 상쾌함, 한줄기 빛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 그러니 슬픔도 기쁨도 결국은 하나란 걸.
조명 하나만 켜 놓고 앉은 밤, 슬픔의 방문을 환영한 건 슬픔의 방문 뒤엔 날 감싼 어둠이 일순간 개일 것임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펑펑 우는동안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직관적인 앎이 인다. 눈물 그 자체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고 나 자신을 더욱 사랑해주라는. 더 아껴주고 돌봐주라는 것도.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서야 눈물을 훔칠 생각을 한다. 눈물을 훔칠 생각이 든다는 건 이 눈물도 곧 멈출 거라는 걸 의미한다. 이런 날은 휴지고 뭐고 없다. 입고 있는 잠옷으로 눈물을 훔친다. 내 손등으로 내 눈물을 닦고 나면 다시 한 번 생의 의지, 나 자신으로 바로 서기 위한 다짐, 환희, 어떨 땐 역설적이게도 황홀경이 있다.
울음을 멈추고 눈물을 어느 정도 닦아내고 나면 순간 정지상태가 되는데, 그 정지의 순간이 날 이토록 살게 하는 것이다. 멍때림의 순간을 사랑한다. 다시 태어난 듯한 기분. 눈물이란 그런 것이다. 날 더 슬프게 하려는 게 아니라 날 돕기 위한 거란 걸.
거부할 수 없는 것이 슬픔이고 눈물이다. 나는 내 모든 슬픔을 사랑하고 그 슬픔을 기꺼이 감내하려 하는 받아들이려 하는 안으려는 나 자신도 사랑한다.
두 팔로 내 상체를 꼭 끌어 안았다. "초아야,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내 안에서 절로 이는 말들을 멈출 수 없었다.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다. 나의 내면과의 만남이었다. 늘 그 자리에서 날 지켜주는 그것. 결코 변할 수 없는 그것.
"울고 싶으면 언제든 울어. 슬픔은 널 위해 있는 거야. 오늘 울기 참 잘했어. 너무 잘했어."
지리한 고독도,
지리한 외로움도,
지리한 슬픔도,
결국엔 날 위해 존재한다.
슬픔과 눈물의 방문은 늘 이런 방식으로 내게 선물을 주고 떠난다.
언제든 방문할 거라는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