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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도리 Apr 08. 2024

비 오는 도쿄에 다녀왔습니다_1

계획대로 안 풀리는 퇴사 여행기


퇴사를 앞둔 사람이라면 열에 아홉은 해외여행을 계획한다. 일종의 보상심리인 것 같기도 하다. 막연하지만 후지산이 보고 싶었다. 봄이면 벚꽃이 만개하는 일본의 풍경을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 년 만의 해외여행이었다.



나리타공항에 내리자마자 기적처럼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자욱하다. 얼른 날씨 어플을 켜서 여행 기간 중의 날씨를 조회해 본다. 내리 흐리고 비가 오는 날씨에, 마지막 날에만 해가 둥그렇게 떠있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다.


비오는 날의 도쿄 시내


그래도 어쩌겠는가, 날씨를 내 손으로 뒤바꿀 수는 없다. 오전 10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탔음에도, 숙소가 있는 신주쿠에 도착하니 오후 네시가 됐다. 내리는 비를 추적추적 맞으며 첫끼를 해결하기 위해 라멘집에 들어섰다.


사진 속 인물은 제가 아닙니다..


뜨끈한 국물을 들이켜니 속이 든든해진다. 보약 같은 라멘을 비우고 나니 다시 걸어갈 힘이 생겼다.

첫날은 숙소 체크인을 하고 가볍게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야경 명소로도 유명한 도쿄역을 방문했다.


진한 국물이 일품인 소유라멘


분명 도쿄에 왔는데 어딘가 낯익은 풍경이다. 우리나라의 서울역과 참 많이 닮아있는데, 역사를 찾아보니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의 위상을 선전하기 위해 서울역(구 경성역)을 도쿄역과 비슷한 양식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서울역과 비슷한 모습의 도쿄역


서울역보다 큰 규모와 주변의 오피스 상권이 드러나는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니 도쿄의 생동감이 느껴졌다.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야경은 예술이다.


도쿄역의 야경


도쿄역을 가볍게 둘러보고 '우니동'으로 유명한 식당에 들어섰다. 흐린 날씨 탓인지 늦은 시간 탓인지, 유명한 곳임에도 한적함이 느껴졌다. 오히려 좋다.


영롱한 황금 빛깔의 나마비루를 한 잔 들이켜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왜 우리나라 맥주집에선 이런 맛이 안 날까, 하루의 피로가 눈녹듯 사라지는 기분이다.


영롱한 황금빛깔의 나마비루


푸짐한 우니동과 카이센동까지 등장했다. 이 정도 구성을 단돈 6,500엔, 한화 약 6만 원 정도 가격에 즐길 수 있다. 비릿함이 전혀 없는 고소한 우니를 마음껏 퍼먹으니 뱃속도 마음도 풍요로워진다.


양이 엄청난 우니동과 카이센동


뱃속을 든든하게 채웠으니 가볍게 알콜을 채워주러 향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다른 주세법 덕에, 값싸게 좋은 술들을 즐길 수 있다.


숙소 근처에 위치한 제법 분위기 좋은 위스키바. 바텐더분이 친절하게 취향을 물어보고 위스키를 추천해 준다. 일본은 어딜 가나 종업원들이 참 친절한 것 같다. 스모키하고 피트한 향을 좋아하는 친구와, 버번을 좋아하는 내게 두 가지 일본 위스키를 추천해 줬다.



사부로마루 위스키는 특유의 훈연향이 진하게 느껴져서 참 신기했다. 숯불로 구워낸 위스키를 마시는 느낌이랄까. 카노스케 위스키는 버번 특유의 오크향이 강하게 느껴졌다. 50도가 넘는 술로 취기가 금방 오른다.


사부로마루 위스키(좌) / 카노스케 위스키(우)


기분 좋게 한 잔 하고 계산서를 받아보니, 가격도 제법 강력하다. 가볍게 한 잔씩 즐기고 6만 원을 지출했다. 일본의 식당들은 자릿세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 그 영향이 아닐까 싶다. 주류세보다 강력한 자릿세..



비가 오고 흐릿한 날이지만 나름 알차게 여행 첫째 날을 마무리했다. 문제는 내일 후지산을 보러 가와구치코로 넘어가야 하는데, 역시나 예상치 못한 일들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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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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