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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도리 Apr 30. 2024

처음 만난 할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모두 외롭다


햇살이 따사로운 주말의 오후. 테라스에 앉아있기 좋은 계절이다. 식당들은 하나둘씩 야장 테이블을 깔기 시작하고, 카페의 테라스에는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여자친구와 합정에 있는 한 카페를 찾았다. 마침 신메뉴를 선보이는 행사가 진행 중이라 오가는 많은 사람들의 생동감이 느껴진다.


기분 좋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야외의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매장 맞은편에는 푸른 나무가 있어 봄바람에 살랑이는 녹음을 바라보기에도 좋았다.


입구에서는 신메뉴에 대한 손님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투표가 진행 중이었다. 두 개의 새로운 메뉴 중 취향에 맞는 메뉴를 고르는 투표로, 막상막하의 접전이 펼쳐지고 있어 흥미를 자극했다.


부드럽고 고소한 풍미가 좋았다는 사람,

깔끔한 텍스쳐와 은은한 단맛이 좋았다는 사람,

각자 고르는 기준과 취향도 다양하다.


분주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사람들 사이로 한 노신사 분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서성인다.


"재밌는 행사 중이야?"


카페를 종종 지나치시는 듯 직원에게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지신다. 짧은 답변을 들은 뒤로 무언가 아쉬운 듯 한 마디를 더 덧붙인다.


"젊은 사람들 이렇게 모여있는 걸 보면 부럽고 너무 아쉬워. 나이 들면 갈 데가 없어. 허허"


단정하고 깔끔한 셔츠 차림에 멋 내기를 좋아하시는 듯한 외모와는 반대로, 말 한마디에 공허함과 외로움이 느껴졌다.


"어르신 들어가셔서 커피 한 잔 하세요 여기 맛있어요."


분주한 직원을 대신해 건넨 나의 말 한마디에 머쓱한 미소를 지으신다. 이내 말동무가 생겼다는 듯 생기가 도는 얼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나가신다.


젊은 시절에 사업과 부동산 투자에 성공하며 부를 이루었지만 지금은 해외에 있는 자녀들과 손주들, 그리고 사람을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외롭게 보내고 있다고 하셨다.


중간중간 젊은이들의 눈치가 보이셨는지 '내가 쓸데없이 이런 말을 계속하네'라는 말을 머쓱한 웃음과 함께 자꾸 덧붙이셨다.


주머니에서 꼬깃한 홍삼캔디 한 알과 천 원짜리 두 장을 건네주시며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한 30분을 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자리를 떠나시기 전에는 인상이 너무 좋다며 만 원을 꺼내서 한사코 거절하는 나의 손에 꼭 쥐어주셨다.




그날 처음 만난 할아버지와 봄날의 날씨보다 더 따뜻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일상에서 이런 소소한 나눔을 할 수 있는 순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모두 외롭다. 혼자 와서 혼자 간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젊고 화려한 시절에는 외로움을 많이 잊고 지낸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회 활동은 줄어들고 외로움이 스며든다.


카페에 들어가셔서 커피 한 잔 하고 가시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드렸지만, 할아버지는 끝내 카페에 들어가지 않으셨다. 젊은이들로 가득한 생기 넘치는 공간에서 말로 표현하지 못할 벽이 느껴졌던 건 아니었을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남일 같지 않은 나의 미래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해 보니 정말 어르신들이 마음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공간이 떠오르지 않았다.


뉴스에서는 연일 고령화를 헤드라인으로 내걸지만 정작 우리 사회의 인프라는 눈에 띄게 변화한 점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언젠가 이런 어르신들도 편하게 오고 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는 어렴풋한 생각도 품어보았다.


사람 간의 정이 있어야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나이가 들고, 사람의 온기를 찾는 순간이 올 것이다. 경쟁과 생존을 자극하는 사회이지만 여전히 정을 나눌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오늘 나눈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오래도록 간직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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