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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주어진 길을

by 이창수 Mar 09. 2025

여러 번 이사를 다니고 3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책장에서 살아남은 책이다. 속표지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글씨에는 '1990. 6. 12. 화 수학여행 전날에...'라고 적혀 있다. 


신라 출판사에서 1988년에 출판한 시집이다.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윤동주의 시를 모아 발간했다. 감수성이 가장 예민하던 시절 문학에 나름 심취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수학여행 전날에 서점으로 달려가 시집을 샀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윤동주의 시집 첫 시(서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학교를 옮기면서 새로운 곳에서는 실수를 덜해야지 마음먹었다. 교무실에서 말을 최소화해야지 했다. 일부러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 설레발을 치지 말아야지 했다. 좀 더 차분하게 지내야지 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윤동주 시인처럼 늘 뒤돌아보면 후회할 일만 가득하다. 이렇게 행동했어야지, 이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하지, 조금 더 기다렸어야 하는데, 귀를 열고 더 들었어야 하는데.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괜히 마음이 쓰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상처를 준 이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더 넓은 마음으로 내가 먼저 다가가야지.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조금 느리더라도 정직한 태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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