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환 May 29. 2023

The Mechanical Revolution

SYSTEM51은 혁명이라고.

혁명革命은 단어가 풍기는 묵직함 때문에 무게를 견딜 수 있는 대상에만 국한해 사용해야 한다. 시계사의 흐름 중 혁명이란 표현에 걸맞은 이벤트는 SYSTEM51의 출시. 스와치 스스로 ‘The Mechanical Revolution’이란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워 2013년 바젤월드에서 공개한 SYSTEM51은 『창세기』의 1장 1절 같은 존재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를 모른다면 기독교인이라 할 수 없듯, 시계에 발 좀 담근 이들은 꼭 알아야 하는 시계라고.


성경까지 들먹여가며 혁명에 당위성을 부여한 이유는 51개의 부품으로 구동되는 셀프 와인딩 시계를 기계조립만으로 만들어냈기 때문. 그게 뭐 대단하냐 싶을 수 있는데, 대부분의 기계식 시계에는 수백 개의 부품이 필요하고, 사람 손이 필수란 걸 알면 생각이 달라질 것.


SYSTEM51의 개발은 수백 개의 부품을 51개로 줄이는 과정이라 봐도 과언이 아닌데, 취득한 16개 이상의 특허는 스와치의 업적에 혁명이란 표현이 충분하다는 증거. 여타 시계들과 비교해도 넉넉한 90시간 정도의 파워 리저브 역시 대단하다. 스위스 기계식 시계가 비싼 이유 중 하나는 루뻬를 낀 장인이 손수 조립하기 때문인데, SYSTEM51은 어셈블리로 조립해낸 기계식 시계라 접근가능한 가격이 특징.


가격이 비싸야만 럭셔리일까.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표를 앞세워 부담만 잔뜩 안기는 것들은 럭셔리가 아니다. 럭셔리를 정의하자면 대상은 물론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우아해야 한다는 것. 가격 역시 우아함을 표하는 하나의 수단일 수 있으나 그게 전부가 되어선 안 된다고.


 물리적 제원을 떠나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싸늘한 시선과 대중의 외면을 받아온 기계식 시계의 현실을 뒤집는 데 일조했다는 점에서 SYSTEM51은 위대한 제품이다. 스토리를 간직한 채 시계사의 주인공으로 기록된 20만 원대의 SYSTEM51은 합리적인 럭셔리.


입문용 기계식 시계를 고민하는 이들에겐 첫 시계로, 금통 스카이드웰러부터 파텍 필립 퍼페추얼 캘린더까지 갖고 있는 이에겐 마지막 시계로 제 격. 브레게나 랑에 운트 죄네, 파텍 필립은 틀림없는 럭셔리지만 이들이 럭셔리를 구분하는 척도가 될 수는 없다. 수천만 원, 수억 원의 시계들 속에서도 스와치를 이해한 사람의 SYSTEM51과 시계를 손목에 두르는 과정은 분명히 우아할 거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의 여부는 수준의 차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