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 - 나의 입원일기
살면서 잔병치레는 많이 했지만 단 한번도 큰 병을 앓은 적은 없었다. 그만큼 병에 대해 무지했고 관심이 없었던 나에겐 의사 선생님의 걱정스런 목소리마저 크게 와닿지 않았다.
"이거는, 큰 병원을 가봤으면 해요."
살면서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정확한 병명을 구분 짓기가 어려워 추측성으로 작성해주신 그 병명은 '림프관종'이었다. 소견서를 받고 바로 대학병원에 전화하여 빠르게 예약을 잡았다. 다행히 빠른 날짜를 잡을 수 있었지만, 그 사이 주말이 껴있는 바람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검색에 들어갔다.
큰 불편함이 없으면 추적검사로만 끝나는 점과 개복 수술을 진행해야 할 수도 있는 점. 케이스마다 치료 방법이 너무 달라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나, 수술해야 하는건가? 아니, 그 정도는 아닐까? 근데 꽤 크던데. CT 촬영 후 선생님이 보여 준 사진에는 마치 구름이 낀 것 마냥 복부를 가득 채운 하얀 무언가였다. 그걸 보고 나니 그동안 내가 왜 왼쪽 허리가 유달리 아팠는지 알 수 있었다. 그저 허리가 안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내 몸 속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끝 없는 불안감이 치솟았다가도, 이렇게 생각만 해봐야 어차피 소용 없다며 자리에서 일어나길 반복했다. 여느 때처럼 좋아하는 것을 시켜 먹고, 앵무새 밥을 주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깨끗하게 살고 싶은 마음으로 구매한 세탁조 클리너도 썼다. 미처 풀지 못한 택배 상자도 뜯었다. 그리고 다시 불안감이 엄습했다.
췌장, 신장, 낭성 림프관종, 격벽성.. 여러 가지 단어를 검색해봤다. 수술 후기도 몇 개 있었다. 정독은 포기 했다.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더 슬픈 것은, 수술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그 불안감보다 혹여나 수술하게 될 경우에 잃게 될 돈이었다. 수술비를 찾아보고, 실비를 찾아보고.. 안 그래도 돈이 없는데 아픔에 돈을 써야 하는 상황을 절망했다. 하긴, 약하게 태어난 주제에 건강하게 살긴 바란 건 너무 큰 바람이었다.
그냥 빠르게 결과를 보고 싶다. 뭐든 결론이 났으면 좋겠다. 불안감 속에서 기다리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대학병원은 너무 넓어서 길을 찾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나도 이 정도인데 어르신들은 오죽할까. 열심히 길을 물어 물어 산부인과에 도착했다. 긴장하며 진료실에 들어갔으나 교수님은 내 사진을 보자마자 "이건 우리 쪽이 아닌 것 같은데?" 라고 말씀하셨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허무하게 산부인과를 나와 다시 외과로 향했다. 본관과 신관을 넘나드는 일은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너무 지쳐서 무슨 결과든 빨리 듣고 싶었다.) 산부인과 진료가 거의 3분만에 끝났기에, 외과에는 예약 시간보다 훨씬 도착했지만 다행히 금방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일단, 수술을 하셔야 하고요."
예상했지만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어버렸다. 다만 이것이 '림프관종'인지는 100% 확신할 수는 없다고 하셨다. 막상 까보니 다른 것일 수도 있다고. 아무튼 림프관종은 매우 흔하기 때문에 아주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고 하셨다. (검색해보니 원인도 알 수 없다고 하더라..) 언제부터 불편해졌는지 물으셔서, 허리는 꽤 예전부터 아팠지만 헛구역질을 최근부터 발생했다고 대답했다. 교수님은 사진을 확대해서 한참을 보시더니, 크기가 크다보니 다른 장기를 누르면서 소화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근데 문제는, 이게 지금 장기들 사이에 있단 말이죠-? 췌장이랑, 사이에 있다보니까 이것만 이쁘게 똑 떼어낼 수가 없어요."
굳은 림프액이 너무 큰 것도 문제이지만, 다른 장기들 사이에 있다보니 쉽게 제거가 될지가 더 문제였다. 두 손 꼭 모아 기도했던 내 바람을 무참히 짓밟듯 너무 크기가 커서 복강경수술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 결국 개복수술인가.
교수님은 수술이 어려운 것은 아니고, 예후도 좋다고 말씀하셨다. 즉 '죽을 고비'가 있는 수술은 아니라는 것. 그렇지만 결국 이후에 생기는 모든 후유증은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었다. 생사를 오가는 수술은 아니지만, 수술 후에도 온전치 못할 몸. 아, 운동 좀 해둘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