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나는 케이크 초 위에 서 있는 사람 같다.
마트 진열대마다 반짝이는 케이크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위에 꽂힌 작은 초들 이 사람들처럼 보인다.
잠깐 반짝였다가, 누군가의 소원과 함께 후- 한 번 불리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라지는 불빛들.
그 사이에 나도 서 있는 것 같다.
언제든 불면 사라질 것처럼, 위태로운 자세로
불면 사라지는 인연들이 떠오른다.
또 불면, 또 사라지는 얼굴들....
그래서 연말이 되면 유난히
“꺼져버린 불”의 목록을 세게 된다.
올해는 누가 꺼졌고,
누가 케이크에서 내려갔는지,
누가 아직 내 옆에 남아 있는지.
불이라는 건 참 이상하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태워버리기도 한다.
춥고 어두운 밤에는 살맛을 주지만,
잠깐만 방심해도 모든 걸 잃게 만든다.
사람 사이의 감정도 그렇다.
가까워질수록 따뜻해지지만,
어긋나는 순간 통째로 타버리곤 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 불이 무섭다.
차라리 물을 확 끼얹어
케이크 위 장식을 다 망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 연말이라는 무대를 통째로 엎어버리고,
모든 인연을 리셋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케이크 진열대 앞에 서서 사람들을 본다...
누군가는 함께 케이크를 고르고,
누군가는 혼자 케이크를 집어 들고,
누군가는 그냥 지나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나는 케이크 초가 아니라 케이크를 만드는 사람이고 싶다고 생각한다.
누가 불을 끄든 말든
그 안에 들어간 시간과 정성은 내 손안에 있는 사람.
아무 데나 꽂혀 있다가 한 번에 꺼지는 초 말고,
조금은 서툴더라도
케이크 전체를 빚어내는 제빵사 쪽에 서보고 싶다.
이 시집은 그런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불면 사라지는 사랑들,
한 번 불어버리면 돌아오지 않는 인연들을
그냥 공허로 두지 않기 위해서...
한때는 나도 케이크 초처럼
누군가의 소원 위에 서 있다가 꺼져버린 사람 같았지만
이제는 그때의 바람과 불빛들을
언어의 반죽으로 조금씩 치대어 보고 싶었다.
여기에는 타인을 사랑했던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끝내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
더듬거리며 써 내려간 문장들도 함께 담겨 있다.
어쩌면 조금 난해하고,
말이 어색하게 걸리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어설픔까지 포함해서,
이 시집은
“사랑을 말하는 법을 다시 배우려는
한 사람의 언어 연습장”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연말의 케이크 진열대를 바라보는 당신에게,
언젠가 한 번쯤 꺼져버린 불의 기억이 있다면,
이 시들이 아주 조금은 옆자리를 내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오늘 나는,
"예쁘게 빚어내는 제빵사가 되고 싶다"라고 적어두기로 했다.
케이크 위에 꽂힌 초가 아니라,
그 케이크를 굽는 사람으로
첫 Page를 연다.
글 · 이미지 ⓒ 디오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