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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나의 엄마

바닷속으로 흘려보낸 딸의 병 편지

by 디오소리

엄마, 안녕.


이 편지를 쓰면서도 자꾸 눈물이 나.


요즘 이상하게, 내가 사는 이 삶이 가끔은 꿈처럼 느껴져.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것도,

엄마 딸로 자라온 것도

정말 있었던 일이 맞나 싶을 때가 있어.


가끔은 이런 생각까지 해.

“내가 엄마 딸로 태어난 것도,

어쩌면 한 번 일어난 기적 같은 착각이면 어쩌지?”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곧 마음을 고쳐 먹어.


나는 분명히 엄마 딸로 태어났고,

그건 내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사실이자

가장 고마운 일이라는 걸.


얼마 전에 오래된 앨범을 꺼내보다가

바닷가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 사진이랑


개나리 앞에 서 있는 젊은 엄마 사진을 봤어.

사진 속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얼굴이더라.


그 나이의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그 바다와 꽃들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사진 찍히는 게 쑥스러웠을까,

아니면 마음 깊은 곳에 숨겨 둔 꿈들을

혼자 조용히 떠올리고 있었을까.


엄마에게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간절한 소원이 있었겠지.

지금의 나처럼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막막한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사랑받고 사랑 주는

조용한 하루를 바라던 걸까.


나는 솔직히, 참 무뚝뚝한 딸이야.

입으로 “사랑해”라는 말을 잘 못 하고,

힘들다고 솔직하게 말하기보다

그냥 혼자 삭여 버리는 쪽을 더 자주 택해 왔어.

그러면서 속으로는 또

엄마에게서 정서적인 공감만 바라던 내가

요즘 들어 참 부끄럽게 느껴져.


생각해 보면 우리 집에는

뾰족뾰족한 고슴도치 같은 순간들이 참 많았던 것 같아.

서로의 말이 가시에 걸려서

괜히 더 아프게 찌르고 지나가 버린 날들.


그 속에서 나는

엄마를 꼭 안아 주고 싶은 마음과

멀리 도망가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자주 갈팡질팡했어.


그래도 이상해.

그 모든 날들 속에서

엄마를 보듬어 주고 싶었던 마음이

조용히 계속 내 안에 있었다는 걸

이제야 또렷하게 느끼거든.


예전에 엄마가 그랬지.

“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사랑한 사람은 너야.”


그 말을 남동생과 아버지 앞에서

툭 하고 말했을 때,

나는 순간 얼어붙었어.

솔직히 말하면,

엄마가 처음 사랑한 사람은

‘엄마 자신’이라고 말할 줄 알았거든.


그 자리에서 주저 없이

“너”라고 말하는 엄마를 보면서

놀랍기도 했고,

한편으론 엄마에게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그제야 온몸으로 느끼게 됐어.


“엄마가 처음 사랑한 게 나야.”

이 말은 나에게

오래오래 마음속에서 빛나는

부적 같은 문장이 되었어.

힘들 때마다 꺼내 읽으면

조금은 덜 외롭고,

조금은 덜 흔들리게 해 주는 문장.


바다를 떠올리면 엄마가 더 많이 생각나.

멀리서 보면 바다는

그냥 하나의 파란 선일뿐이지만,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면

수천 번의 물결이 부딪히고 깨지고

다시 일어나는 모습들로 가득하잖아.


엄마가 내게 그런 사람인 것 같아.


내 눈에 보이는 건

늘 똑같은 ‘엄마’ 한 사람뿐이었는데

그 안에서는 수없이 밀려오는 파도들을

혼자 버티고 있었겠지.


올 한 해만 생각해도

돈 걱정, 자식 걱정, 남편 걱정…

말로 다 꺼내지 못한 서운함과 외로움까지.


그 많은 물결을 넘나들면서도

크게 내색하지 않고 버텨 온 사람이

엄마였다는 걸,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아.


내가 여기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던 건

엄마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파도를 막아 주고,

나 대신 맞아 주고,

내 앞으로 오는 물살을

조금이라도 약하게 만들어 줬기 때문이겠지.


늦었지만, 이제야 그걸 깨달아.


엄마는 내가 문헌정보학과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끝까지 걱정 섞인 얼굴로 반대했지.

나는 그때 엄마를 많이 원망했어.

“왜 내 꿈을 믿어 주지 않을까,

왜 나만 자꾸 다른 길로 밀어내는 걸까.”


엄마가 내 삶을 막는 사람처럼 느껴지고,

내 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시기가 있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도 조금씩 나이를 먹어 가면서

다시 그때를 떠올려 보면

엄마 마음이 이제는 조금 보여.


엄마가 나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혹시 내가 다칠까 봐,

상처받고 무너질까 봐,

어떻게든 더 안전한 길로

데려가고 싶어서 그랬을 거라는 생각.


세상에 ‘완전히 옳은 선택’이라는 게

정말 있긴 할까.


그때 내가 가고 싶던 길도,

엄마가 말하던 길도,

어쩌면 둘 다 정답도, 오답도 아니었는지도 몰라.


이제는 조금 알겠어.

부모도 처음이라서,

늘 딱 맞는 선택과 조언만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엄마도 엄마 인생에서

처음으로 ‘나’라는 아이를 키워 보는 중이었으니까,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

말하고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


그래서 지금은

그 시절의 우리를 떠올리면

“그때 우리, 둘 다 참 서툴렀구나.”

이렇게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돼.


그래도 그 시절의 상처가

저절로 사라지는 건 아니라서

이렇게 편지로 꺼내 쓰고 있는지도 몰라.


엄마를 향한 원망을

조금은 이해로 바꾸고,

그 자리 위에 다시 쌓을 말을

이제야 하나씩 찾아보고 싶어서.


요즘 나는

내 꿈을 조금씩 입 밖으로 꺼내는 중이야.


생활기록부를 다시 보면

3년 내내 특기·흥미는 ‘독서’,

진로 희망란에는 계속

‘도서관 사서’라고 적혀 있더라.

반에서 도서 관리 맡아서 책 정리하고,

공모전에서 편지 쓰기로 상도 받았던 기록들.

돌아보면 나는 예전부터

책과 편지, 도서관과 기록을

좋아하는 아이였구나 싶어.


그래서 지금 다시 사서라는 꿈을 향해 가는 것도

갑자기 생긴 마음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조금씩 자라 온 씨앗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근데 이제는 이렇게도 생각해.


꼭 ‘사서’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내가 받은 사랑을,

엄마에게서 배운 그 마음을,

아이들에게, 어린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으로 건네줄 수 있다면

어떤 자리에서든 좋겠다고.


책을 통해서든, 글을 통해서든,

수업이든, 작은 프로그램이든,

어떤 방식이든 괜찮아.

누군가의 어린 시절에

조금 따뜻한 문장, 따뜻한 어른으로

남을 수 있으면 좋겠어.


그리고 엄마의 齒(이) 문제도 자꾸 떠올라.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엄마 입 안의 아픔이

그냥 치아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엄마가 살아오면서

꾹꾹 눌러 삼켰던 시간들 같아서

마음이 서늘해져...

속으로도 밖으로도 운 적도 많았지..


다른 건 몰라도

엄마의 건강, 엄마의

齒安(이 편안함)만큼은

이제 내가 꼭 지켜 주고 싶어.


아파도 참고 넘어가던 시절 대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 줘.

이제는 내가 같이 병원 갈게.”

라고 말할 수 있는 딸이 되고 싶어.


내가 강해지고 싶은 이유를

하나씩 적어 보면

그 중심에는 항상 엄마가 있어.


돈을 잘 벌고 싶은 마음도,

내 삶을 내가 선택하고 싶은 마음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당해지고 싶은 마음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엄마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겹겹이 숨어 있는 것 같아.


엄마의 남은 삶이

조금이라도 덜 아프고,

덜 두렵고,

조금 더 편안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나도 버티고, 공부하고,

다시 일어나 보려고 해.

언젠가 내가 더 단단해졌을 때,

“이제는 내가 엄마 옆에

든든히 서 있을게.”

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


올 한 해

돈 걱정, 자식 걱정, 남편 걱정…

정말 많이 힘들었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해서

그냥 웃고 넘긴 날들이 많았겠지만,

나는 알아.

엄마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그리고 다가올 미래가 얼마나 두려울지도


그래서 이렇게라도

글로 적어 보고 싶었어.

“엄마, 고생 많았어. 정말 수고했어.”


이 말을

이 편지 속에 꾹꾹 눌러 담고 싶었어


이젠 내가

엄마의 작은 울타리가 되어 줄게.

세상이 너무 거칠게 느껴지는 날에


엄마가 그 안으로 쏙 들어와서

잠깐 숨 돌릴 수 있게,

이제는 내가 엄마를 꼭 안아 줄게.

“엄마, 괜찮아. 나 여기 있어.”

라고 말해 줄 수 있는 딸이 될게.


그리고 정말,

누구보다 사랑해, 엄마.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거울 볼 때마다

주름 깊어졌다고 속상해하지 말아 줘.


엄마의 그 주름 하나하나가

우리를 키워 낸 시간의 기록 같아서

나는 오히려 더 예쁘다고 느껴.

엄마가 웃을 때 생기는 주름,

걱정하다가 이마에 잡힌 주름까지도


다 엄마라서, 다 예뻐.


지금도 이렇게

책상 한편에서 엄마 생각을 적고 있어.

책들이 칸칸이 꽂혀 있는 이 공간이

언젠가는 내가 하루를 보내는

작은 우주가 되겠지.


그때도 아마,

어느 날 문득 엄마 생각이 나서

또 이렇게 몇 줄 쯤은

끄적이고 있을 것 같아.


멀리 살아도,

같은 집에 살아도,

어느 날은 서운하고

어느 날은 고맙고,

우리는 그렇게 계속

서툴게 사랑하면서 살아가겠지.


그래도 확실한 건 하나야.


지금 이 순간,

책상 한편에서 눈물 찍어 가며 쓰는 이 편지가

엄마에게 닿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엄마,

오늘도 나를 응원해 줘서 고마워.

나는 여기에서,

엄마 딸로,

그리고 언젠가 아이들에게

희망을 건네는 한 사람으로,


조금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앞으로 걸어가 볼게.


엄마,

정말 많이 사랑해.


엄마, 나도 엄마를

나만큼이나 사랑해.


그러니까 이제는



엄마, 나도 엄마를

나만큼이나 사랑해.

그러니까 이제는

엄마도 엄마 자신을 나만큼이나 사랑해 줘.




i love u so much..



글 · 이미지 디오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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