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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류학자 Jun 17. 2023

팔색조 논문 손보기 (2)

새로운 관점 제시

대학원생은 대학생처럼 수업도 듣는다. 일반적으로 석사는 3학기, 박사 역시 3학기 동안 수업을 들어야 한다. 따라서, 나와 같은 석박사통합과정생의 경우 총 수업기간이 3년이다. 연구와 수업을 병행하면 여간 일이 많은데, 그럼에도 수업은 지식이 부족한 대학원생에게 공부의 강제성을 주기에 필요한 시간인 것 같다.


  수업이 끝나고 연구실로 돌아오던 중 복도 끝에 샌드위치를 드시며 무언가를 주시하고 계신 교수님을 발견했다. 교수님 시선의 끝이 향한 곳은 연구실 앞 복도에 붙여둔 나의 팔색조 학회 포스터였다. 허걱 놀라며, 후다닥 달려갔다. 샌드위치를 드시던 교수님은 뛰어온 대학원생에게 이제 논문을 작성할 시간이라고 하셨다. 다만 보여주는 내용이 너무 단순해서 추가적인 결과가 필요성을 말씀해 주셨다.

  팔색조 논문 손보기 (1)에서 말했듯 포스터에 담긴 결과는 "연구를 제대로 처음 하는 대학원생"이 작성한 것이라, 품고 있는 게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팔색조 새끼의 기초적인 식단에 대한 보고는 이전의 논문들과 결과가 비슷해서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할 것 같았다. 물론 새로운 지역에서 조사한 것이지만, 기존 사실을 지지하는 논문 정도가 될 것이다. 

  과학적 의미를 갖는 논문은 기존과 정반대의 현상을 보여주거나,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기존의 논문이 놓친 현상을 해석하여 이후 연구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새로운 것을 제시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이미 데이터가 수집이 끝난 나의 경우는 선택지가 많지 않은데, 다행스럽게도 하나의 연구 주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팔색조가 지렁이를 잘라 새끼들에게 먹이는 행동에 관한 것이다.

  팔색조는 둥지에 도착하기 전에 지렁이를 자르고, 자른 지렁이를 새끼들에게 먹인다. 이렇게 먹이를 손질해서 새끼에게 먹이는 행동은 다른 새들에게도 흔하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다만, 이전의 연구는 독이 있는 벌의 침과 소화하기 어려운 곤충의 날개를 제거하는 등을 보고했고, 부드러운 지렁이를 자르는 행위는 사뭇 다른 기능을 할 것이라 예상했다. 다른 연구 지역의 팔색조 역시 지렁이를 잘라 먹였는데, 이에 대해 연구된 바가 없어 새로움이 있었다.


팔색조 부모가 지렁이를 잘라 새끼들이 있는 둥지로 가고 있다. 부리에 있는 지렁이를 잘 보면 잘린 자국이 보인다. © 사진작가 장성래


  교수님께서도 한 가지 가설을 제안해 주셨는데, 바로 팔색조의 번식기 행동권 크기가 서식지 내 지렁이 밀도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은 팔색조 새끼의 식단의 약 80% 이상이 지렁이라는 결과에서 비롯됐고, 그렇기에 매우 타당성 있었다. 실제로 먹이가 풍부하지 못한 서식지의 경우 먹이가 풍부한 서식지에 비해 부모새가 충분한 먹이를 공급하기 위해 둥지로부터 먼 거리를 이동한다는 보고도 있다.

  위 새로운 2가지를 큰 방향성으로 정하고 다시 분석을 시작했다.


 ... 1년 동안 다른 연구와 병행하며 분석을 진행했다.

 ...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내가 뭘 하는지 잊었다.

 ... 또다시 고통의 수개월이 흘렀고 뭘 하는지 다시 깨달았다.

 대학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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