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참가
입학시험으로 진행한 팔색조 연구를 빠르게 학술지에 제출할 생각이었다. 성격상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빨리 털어버리고 싶어 한다. 대학생 때는 과제가 있으면 계속 새로운 과제가 생길 것을 알기에 빨리 제출해 마감일에 제출하는 경우가 없을 정도였다. B+만 챙기면 된다는 심정으로 과제를 받은 당일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렇게 4년의 대학생활 버릇으로 1년 차 대학원생은 빠르게 논문을 내고자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입학 직후 봄을 앞둔 시기에 선배들이 분주하게 생태학회를 준비했다. 교수님께서 먼저 권하지 않으셔서 가만히 있었는데 끼고 싶어서 드릉거렸다. 나를 파악한 한 선배가 참여를 제안해 줬고 그러는 와중에 교수님께서 대학원생실로 들어오셔서 그 자리에서 참가를 결정할 수 있었다. 학회에서는 연구 결과를 포스터 (대형 크기의 종이에 인쇄하는 형태) 혹은 구두로 발표한다. 포스터의 경우, 붙여 두고 사람들이 학회 기간 동안 편하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발표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붙여 두고 질문을 피해 도망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구두 발표의 경우 정해진 시간에 참석해서 들어야 하지만 그 자리에서 동시에 여러 사람과 질의응답이 가능하다. 발표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10~20분가량의 발표 자료를 준비해야 하기에 귀찮을 수 있다. 나는 포스터 발표를 골랐다.
포스터를 만들 때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은 여려 종류가 있다. 그중 가장 간단한 것은 역시나 파워포인트이다. 이전에 학회에 참가해 본 선배가 사용했던 파일을 받아서 디자인을 나의 입맛에 맞춰 바꾸었다. 팔색조를 자랑하고 싶어서 사진을 큼지막하게 집어넣었다. 다른 포스터를 살펴보니 내용도 발표 내용의 효율을 높이는 쪽으로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경우를 따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간단한 배경지식, 연구방법, 연구결과, 토의, 결론 순서로 내용을 구성했다. 다른 부분은 크게 상관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이제까지 연구결과 부분이 매우 빈약했다. 하, 괜히 한다고 했나 걱정하던 찰나 교수님께서 학회에 제출하기 전에 보내 보라는 메일을 주셨다.
교수님께 보낸 나의 포스터는 수정을 거쳐서 나에게 왔다. 파일 열기…! 일단, 팔색조가 번식하는 지역이 표시된 지도를 추가하셨다. 지도 위에는 각 지역별 지렁이가 팔색조 새끼의 식단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기입하셨고, 내가 사용한 자료를 수집한 남해군의 위치도 다른 모양으로 표시하셨다. 앞서 말했듯이 크게 결과라고 말할 게 없어서 초점을 남해군과 다른 지역에 번식하는 팔색조 새끼 식단의 비교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한 지도를 넣는 것이 유용해 보였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에도 포스터를 읽는 분들이 궁금할 법한 정보를 기입하라는 조언을 주셨다. 그림을 구성하는 방법에도 수정을 제안하셨다. 이런 방식으로 대학원생이 성장하는 것을 느끼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