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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류학자 May 23. 2023

열정적인 신입 대학원생의 연구 주제 정하기

선택의 연속! 결정의 책임은 대학원생의 몫!

대학원생은 보통 한 번에 여러 가지 연구를 동시에 수행한다. 특히나 박사과정생의 경우 졸업을 위해서는 3~5개의 논문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연구결과물이 필요하기에 하나씩만 붙잡고 있다간 졸업이 상당히 오래 걸릴 수 있다. 시간을 잘 배분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메뚜기 한 종에서 다른 종에서는 관찰되지 않는 다리의 구조물을 탈출에 사용할 것이라는 가설을 연구한다고 치자. 실제 자연에서 관찰하여 그 구조물이 탈출에 쓰이는지, 혹은 다른 역할은 수행하지 않는지 관찰로 확인할 수 있다. 이어서 탈출을 유도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다리 구조물을 제거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비교할 수 있다. 그리고 다리의 해당 미세 구조를 연구실에서 분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원생은 메뚜기를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무더운 여름에 관찰을 진행할 것이고, 숫자가 줄어드는 가을에 메뚜기를 잡아 연구실에서 환경 조성 실험을 진행할 것이다. 더 이상 메뚜기가 없는 겨울과 봄에 준비해 둔 메뚜기 표본으로 미세 구조를 연구할 것이다. 수집한 데이터 분석과 논문 쓰기도 병행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입학 직후부터 위처럼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졸업 주제가 없었기 때문에 못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갓 입학한 대학원생은 연구 주제를 찾아 헤맨다. 교수님이 알려주신 주제를 할 수도 있고, 교수님을 설득할 수 있다면 본인이 주제를 고를 수도 있다. 하지만 연구에 대해 잘 모르는 싱싱한 대학원생이 교수님을 설득할 가능성은 낮다. 입학 직전과 직후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 교수님의 방문을 두드렸다. 이전에 발표된 논문을 바탕으로 할 수 있을 법한 연구를 제안했다. 하지만 항상 무언가 부족했고 매번 빈손으로 나와야 했다. 단순히 재미있을 것 같아 준비한 아이디어가 대부분이라 주로 막혔던 부분은 연구를 해서 얻은 결과가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 물으셨을 때였다. 어정쩡하게 의미를 부여해도 한참이나 부족한 대답을 뱉을 뿐이었다.

  처음 교수님과 타협한 주제는 피식자의 외피 색과 그를 먹는 새의 인지 능력에 관한 것이었다. 이전에 교수님이 진행하는 연구를 이어서 하는 식으로 계획을 세웠다. 겨울철에 야생조류를 포획하여 실험을 하기로 했기에 봄학기에 입학한 나는 겨울까지 다른 일을 하고 있어야 했다. 일단 나에게는 입학 테스트를 통해 준비한 팔색조 논문 초고가 있었다. 잘 다듬어 학술지에 제출해야 했다. 또한 입학 직후의 열정적인 대학원생은 자의지로 일거리를 늘리고자 공부도 하고자 했다. 교수님의 요청과 같은 타의적으로 일거리도 생겼다. 우리 연구실의 경우 교수님께서 임용하신 직후부터 박새과 조류의 번식 생태를 장기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인턴을 할 때 성별구분을 하는 작업을 주로 하여 야외조사 몇 차례 참여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교수님의 요청으로 야외조사를 주로 맡게 됐다. 이 야외조사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에 다루고자 한다.

  입학 한 첫해의 봄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끈질긴 야외조사 중간중간에 열심히 팔색조 논문을 고쳤으며 겨울에 진행할 인지 실험에 대한 공부도 했다. 수업도 들어야 했기에 재미와 더불어 고단함도 있었다. 그렇게 여름을 맞았다. 교수님께서는 새로운 연구과제에 지원하셨는데 “놀라게 하고-추격 (영어로는 flush-pursue이며 기존에 번역된 한국어가 없어 저자가 고민 후 번역함)” 전략에 관련된 것이었다. 이는 숨어서 보이지 않는 피식자를 날개와 꼬리 깃털을 빠르게 움직여 시각적 자극을 주어 탈출하게 만들고, 그 피식자의 위치를 파악해 쫓아서 잡는 새의 사냥 전략 중 하나이다. 순간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물체 (포식자 포함)를 보면 우리는 충돌 전에 피하는데 새가 날개와 꼬리 깃털을 움직이는 행동은 멀리 있던 새가 빠르게 가까이 접근했다는 가짜 정보를 줄 수 있고 빠르게 접근한 새를 피하기 위해 피식자를 탈출하는 행동을 보인다 (모든 새가 이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고, 모든 피식자가 이 사냥 전략에 당하는 것도 아니다).


Northern Mockingbird performs wing flash display - YouTube

위 영상은 "놀라게 하고-추격" 전략을 구사하는 종들 중 하나인 흉내지빠귀를 보여준다. 흉내지빠귀는 날개를 이용해 시각적 자극을 준다.


  말이 길어졌지만 아무튼 지도 교수님은 이 행동을 수십 년간 연구하셨고 이를 추가로 연구하고자 하셨다. 연구과제를 시원할 당시 교수님께서는 나에게 간단히 내용을 설명해 주시면서 이 연구과제가 된다면 이를 연구해 보는 것을 제안하셨다. 열정적인 신입 대학원생은 감사하고 매우 좋다며 미래를 모르고 까불었다. 그렇게 공부를 하며 준비한 인지 연구는 접게 됐다. 인지 연구와 새로운 “탈출 유도-추격 포획” 관련 연구까지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선택의 연속! 결정의 책임은 대학원생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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