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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류학자 May 18. 2023

입학시험 (3)

우물 안의 개구리

과학적 가설을 평가 혹은 증명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중 하나는 충분한 실험 혹은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모으고 적절한 통계 기법으로 확률과 가능도를 구하여 가설의 타당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류학자들 역시 통계를 자주 사용하는데 이러한 통계적 분석 없이 수집한 값만 보여주며 논문을 출간하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대학원생들을 통계를 읽혀야 졸업할 수 있다.




  대학원생은 교수님과 주기적으로 미팅을 갖는다. 진행 중인 연구 과정을 보고하고, 방법을 평가받으며, 이후의 방향을 정한다. 잘못된 방법으로 멀리 가기 전에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이다. 대학원생은 항상 본인 연구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인턴이었던 나는 좋은 생각은 별로 없었고 추출한 값으로 분석을 진행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났을 뿐이었다. 그냥 단순히 분석을 하면 될 것이라는 안일함과 무지성으로 무장한 인턴은 교수님 방으로 돌진하여 대화에 돌입했다.

  ‘교수님! 보시오~ 인턴이 데이터를 다 준비했소!’ 위풍당당 자세였는데 예상외로 덤덤하신 교수님의 태도에 당황했다. 찬찬히 숫자를 보시던 교수님은 여러 질문을 하셨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열심히 대답했다. 한참을 살펴보시던 교수님은 어떤 가설을 세울 수 있고 예측되는 결과가 무엇인지 물으셨다. 나는 팔색조가 새끼들에게 지렁이를 잘라서 먹이는 것에 초점을 두고자 했는데, 여기서 “팔색조는 작은 새끼들이 먹이를 삼킬 수 있게 하기 위해 지렁이를 자른다.”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고 “새끼가 점점 성장할수록 제공되는 지렁이 중 잘린 지렁이의 비율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했고 팔색조가 지렁이를 잘라서 먹인다는 것은 교수님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나의 지식을 간파한 교수님은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앞서 내가 팔색조가 방문한 시간, 먹이의 길이, 먹이의 비율과 같은 정보를 뽑았다고 했는데 이들을 변수라고 부른다.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원인과 결과가 될 변수를 고르고 통계적으로 이를 분석할 수 있다. 교수님의 머리에는 수많은 경험과 지식이 들어있어 원인과 결과가 될 수 있는 변수들을 짝 지어 제안해 주었다. 교수님의 지식에 감탄하며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받아 적었다. 여기까지는 문제없었다. 그다음, 교수님은 변수의 형태를 고려하여 가설마다 사용할 수 있는 통계적 기법을 제안하셨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통계의 기본이 없었던 나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름의 철자로 제대로 유추하기 어려운 방법도 있어 교수님께 펜을 드리며 적어 달라고 부탁도 드렸다. 급 우물 안의 개구리이라 느껴져 시무룩하게 미팅을 마쳤다. 데이터 엑셀 파일을 보고 덤덤했던 교수님의 반응을 이해했다. 연구는 이제야 본격적인 시작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키우던 병아리. 앵무새를 키우다 가금류를 부화시키고 이어서 야생조류로 관심사를 옮겼다. 이제 또다시 연구라는 새로운 관심사가 생겼고 우물 안의 개구리는 냅다 뛰어들었다.


  모르는 것을 마주했을 때의 반응은 사람마다 매우 다양하다. 책을 빌려 다 익히고 시작하는 하는 친구들이 있고, 가능하다면 피하고 보는 친구들도 있으며, 무작정 시작하고 보는 사람도 있다. 내가 주로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지만) 취하는 방식은 무작정 시작이다. 교수님께서 알려주신 통계 방식을 구글에 검색했다. 많은 블로그와 영상에서 이를 설명하고 있었지만 들어도 모르는 경우가 더 많았다. 통계를 수행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도 종류가 다양했는데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무료 프로그램인 “R”을 골라 사용했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것저것 시도를 해본 다음 교수님께 보여드렸다. 그리고 며칠 뒤, 연구실 대학원생 한 명이 교수님의 부탁으로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교수님께서는 까마득함을 느끼셨을 것으로 생각했다.

  연구실 형이 도와주겠다고 나섰지만 내가 통계를 잘 몰라 의사소통이 어려웠고 큰 진척 이뤄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교수님께 드리기로 한 마감일이 속절없이 다가왔다. 정신을 반쯤 놓고 있는 결과를 바탕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전 논문을 참고하여 논문과 같은 구조로 배경지식, 연구 방법, 결과, 토의를 작성했다. 추석에도 고향집에 내려가길 포기하며 끝없이 글을 쓰고 고쳤고 무사히 교수님께 메일을 보낼 수 있었다.

  이렇게 저렇게 대학원생이 됐다. 하지만 슬프게도, 엄청나게 고생하여 작성한 초고는 학술지에 제출하기 위해 수정과 다듬기 과정에서 그 본모습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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