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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류학자 May 17. 2023

입학시험 (2)

연구 방법과 과정

나는 한려해상국립공원 연구원분들 그리고 국립공원 자원활동가이신 장성래 작가님과 함께 팔색조의 번식 과정을 여러 차례 “관찰”하고 기록했다. 팔색조는 대략 1만 마리 정도가 생존해 있을 거라고 추측되는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이다. 숫자가 적기 때문에 그들을 관찰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더욱이 새들은 먹이가 많은 곳을 기억하고 주기적으로 찾기도 하지만 늘 움직이기에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며 새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그나마 육상 포식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물에 사는 새들은 몇 시간씩 같은 자리에서 관찰할 수 있는데 팔색조 같이 산에 서식하는 새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을 꾸준히 관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번식기에 그들의 둥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팔색조는 6월 즘 우리나라에 찾아와 번식하는 철새이다. 특히나 제주도와 남해군을 포함한 남부지방에 상대적으로 많은 개체들이 번식한다. 둥지를 짓고 새끼를 키우는 번식 장소로는 습한 숲을 고른다. 둥지를 짓고 5~6개의 알을 낳아 품고 부화한 새끼에게는 지렁이 위주로 먹여 키워낸다. 습한 장소를 고르는 이유 중 하나는 새끼에게 지렁이를 주로 먹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전반적인 과정을 영상자료와 함께 기록했는데 그 자료들을 논문에 사용하기 위한 형태로 추출해야 했다.


새를 관찰할 때는 위장텐트를 설치하고 그 뒤에서 관찰한다.


  팔색조 새끼의 식단을 다룬 이전 논문들은 부모의 먹이 제공과정의 기본적인 부분을 정리하고 있었다. 먹이 종류별 비율, 제공하는 먹이의 수, 그리고 방문빈도가 새끼의 나이와 시간에 따라 어떠한 차이가 나타났는지 분석하였다. 그 논문들의 주 방법 역시 관찰이었기에 나의 사진과 영상 자료로도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 결과라고 생각했다. 약간의 자신감과 함께 논문에 사용할 자료를 영상에서 추출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취했던 관찰 방식은 팔색조 둥지로부터 충분한 거리에 위장관찰소를 설치하고 그 안에서 촬영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간간히 성체가 사냥을 하는 장면을 간간히 찍긴 했지만, 부모가 먹이를 물고 와 새끼에게 제공하는 장면을 위주로 영상 기록을 모았다. 그렇기에 그 당시의 기록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부모의 둥지 방문 시간 그리고 들고 온 먹이의 종류와 각각의 숫자였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각 먹이 별 길이를 알아내고자 했다. 새끼의 나이에 따라 먹이의 총량이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을 평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먹이의 숫자만을 고려한다면 알아낼 수 없는 예측인데 숫자가 적어도 큰 먹이를 물고 온다면 결과적으로 총량은 늘어날 수도 있다.

제공하는 먹이의 길이를 측정하는 확실한 방법은 먹이를 주고 있는 팔색조를 잡아 부리에서 먹이를 빼앗아 그 길이는 측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확실히 실현 불가능한 방법이다. 스트레스는 번식 성공률에 영향을 주고 심할 경우 부모새가 번식을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고전적인 방법은 새끼 부리 안에 주머니 따위를 넣어 소화기관으로 먹이가 가는 것을 막는 것이다. 부모가 떠나면 먹이를 뱉게 만들어 먹이의 길이를 측정할 수 있다. 이는 매우 고전적이고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새끼의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현시대에 이러한 방식을 사용하는 논문은 없다. 그나마 새들의 번식 성공률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고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DNA 기반의 식단 연구이다. 새들의 똥이나 포함되거나 부리에 묻은 DNA 염기서열을 분석하고 그 염기서열의 주인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다양한 동식물의 유전서열을 밝혀내고 공유하고 있기에 날이 갈수록 더 정확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DNA 기반의 방법은 부모새가 언제 방문해서 어떤 종류의 어떤 크기의 먹이를 얼마나 제공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실험 방법마다 장점과 단점이 있다. 내가 사용할 비디오 녹화 방법은 시각 자료로 제공된 먹이를 동정해야 하기 때문에 종 (species) 단위로 먹이를 세분화하기는 어렵다 단점이 있다. 하지만 고정된 장소에서 번식 과정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부모가 언제 왔고 얼마나 먹였는지 알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다시 먹이 길이 이야기로 돌아와서, 비디오 녹화 자료를 토대로 먹이 길이를 구하기 위해서 알고 있는 특정 길이와 먹이 길이를 비교하여 그 값을 추측하는 것이 실현 가능해 보였다. 이러한 연구에서 주로 사용되는 “알고 있는 길이는” 새들의 형태적 부위이다. 촬영 기록은 2차원 모니터로 보이기에 비교대상끼리 멀리 있을수록 실제 길이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가장 먹이와 가까운 부위를 고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기에 먹이를 물고 있는 부리 길이가 많이 사용되는 것 같았다. 나 역시 부리 길이를 비교대상으로 사용하기로 정했다. 다행스럽게도 한 선행 연구에서 팔색조 표본들의 부리 측정값을 보고하고 있어 팔색조를 잡아서 측정하는 수고를 덜었다.




  모아둔 사진과 영상 자료에서 값을 뽑는 작업을 시작했다. 부모 팔색조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는 장면을 보고 시간, 먹이의 종류, 먹이의 길이를 기록했다. 먹이의 종류를 동정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절지동물을 "종 (species)" 단위로 동정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 도감을 잔뜩 읽고 공부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굳이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생각하기로 논문의 주제는 “지렁이를 주로 먹이는 팔색조” 로 잡아서 지렁이와 그 외로 구분해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구분을 해두면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고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여 분류군 수준으로 분류하고자 했다. 종 구분 없이 지렁이, 메뚜기, 딱정벌레, 애벌레 정도의 수준으로 나눈 것이다.

  처음 보는 생명체를 마주했다. 지렁이만큼 길지만 표면이 주름 없이 매끈하고 머리로 추정되는 부분이 반달 형태였다. 그런데 문제는 대략적으로 어떤 종인지 알아야 검색이라도 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몰라 그조차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 가장 좋은 것은 동료들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혹여 한 명이라도 알 수 있기에 지나가는 선배들을 붙잡고 물어봤다. 매우 놀랍게도 생태쟁이들이 모인 연구실이라 바로 “육상플라나리아”라는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찾아보니 이들은 지렁이를 사냥하여 먹는데 팔색조 새끼의 주식 역시 지렁이라 자연스레 이들도 팔색조에게 사냥당한 것으로 보였다. 여기서 바로 지렁이와 그 외로 구분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복잡하게 얽힌 종들 간의 연결고리 중 하나를 새로 알게 돼 흥미로웠다.


먹이를 사냥한 팔색조 부모. 부리의 가장 끝 부분 (오른쪽)에 위치한 노란색 피식자가 육상플라나리아이다. © 사진작가 장성래


  먹이 길이를 측정하는 과정도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영상에서 스크린샷을 떠서 부리 길이와 물린 먹이의 길이의 픽셀 수를 계산했고 부리 길이를 알려진 팔색조 부리 길이로 두어 먹이 길이를 도출했다. 픽셀 수를 이용한 계산이기에 대충 하면 오류가 쉽게 생겼다. 빨리하고자 하는 마음을 억누르며 정확하게 길이를 측정해야 했다.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번 측정하였고 촬영 장면의 여러 부분에서 값을 구하기도 했다. 총 4개의 둥지에서 먹이 제공 과정 영상과 사진을 분석해야 했기에 봄이 지나고 여름의 끝자락에 나는 엑셀 한가득 채워진 숫자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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