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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류학자 May 15. 2023

대학원 연구실의 대학생 인턴 (3)

까치와 팔색조

박새가 개체수가 많기는 하지만 대중적인 새라고는 하기 어려운 것 같다. 오히려 비둘기가 더 유명하지 싶다. 비둘기를 인지도를 이길 수 있는 새도 물론 있다. 독수리, 청둥오리, 까마귀, 그리고 까치는 충분히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중에서도 도시에서도 볼 수 있고 1년 내내 우리 주변에서 친숙하게 볼 수 있는 종은 바로 까치이다.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까치.


  우리 연구실은 다른 연구실과 함께 까치 장기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박새와 곤줄박이의 장기연구보다 더 오래전부터 시작된 연구로 이후 기후변화가 새들의 생태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연구 자산이다. 1년 내내 다양한 측면의 연구가 진행되는데 나는 그중에 이들의 번식시기에 진행된 연구에 참여했다. 역시나 대학원생들을 돕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까치는 높고 탁 트인 위치에 둥지를 짓는다. 그래서 주로 건물 외벽의 간판 아래, 나무의 꼭대기 부근, 전봇대 등에서 까치둥지를 쉽게 볼 수 있다. 텃새들이 철새보다 더 이르게 둥지를 짓기 시작하는데 텃새 까치 역시 2월부터 둥지를 튼다. 다양한 굵기의 나뭇가지로 외벽을 구성하는데 당연히 썩은 나무를 이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둥지 짓는 시기에 싱싱한 나뭇가지를 꺾는 까치를 종종 볼 수 있다. 내부 공사의 주재료는 진흙과 마른 풀이다. 냇가 부근에서 진흙을 한 아름 물어 둥지로 들어가 바닥에 깐다. 그다음 마른풀을 얹어 알을 낳을 컵 모양의 형태를 만든다. 대략 3월 초에는 알을 낳고 품기 시작한다.

  번식 연구는 이들의 둥지에 접근해야 한다. 알 혹은 부화한 새끼의 동향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까치둥지의 높이는 다양하지만 우리의 손은 닿지 못할 정도로 높다. 그렇기에 크레인차를 이용하여 둥지에 접근한다. 생애 처음으로 크레인차를 타보았는데 전형적인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에게는 충분한 용기가 필요했다. 이것은 익숙해질 수 없을 것이라 여겼는데 까치의 번식이 끝날 즈음에는 무념무상으로 크레인을 탈 정도로 적응해 버려 스스로 놀랬다.




  인턴 기간 동안 직접 교수님의 연구를 돕기도 했다. 간단한 인지 실험으로 본 실험 전에 시행하는 예비 실험에서 보조 역할을 했다. 교수님께서 간단히 실험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고 하고 싶다면 따라와도 좋다고 하셨다. 마침 대학원생들이 나를 찾지 않아 바쁘지 않았기에 넙죽 좋다고 따라나섰다. 이 당시에 나는 대학교 4학년으로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있었기에 교수님께 입학에 대한 의지를 표명할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실험은 산에서 진행했기에 연구실에서부터 걸어서 이동했다. 연구실에서 짐을 챙겼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내가 짐을 많이 챙기려고 하자 나의 마른 몸을 보신 교수님께서는 자기가 드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배려를 받고 산으로 가는 길에서 나는 바로 의욕을 드러냈는데 조금 많이 성급했다. 대부분의 대학원생이 그러겠지만 교수님 앞에서 나는 높은 빈도로 얼어버린다. 뭐라고 하신 것도 아닌데 보이지 않는 아우라에 의해 작동 정지된다. 말을 정갈하게 하려면 심적으로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게다가 교수님께서는 외국인 분이라 영어로 대화를 해야 했다. 그렇기에 더욱이 준비가 필요했지만 그 당시에 나는 성급히 대화를 시작해 버렸다. “잘”이 아닌 “열심히” 말을 하던 나는 교수님의 질문에 또다시 얼어버렸고 교수님께서는 조심스럽게 우리 연구실에서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슬픈 시간이었다. 또한, 안타깝게도 실험을 시작하자 대학원생들이 나를 찾기 시작하여 그 이후에 교수님과 산을 가지 못했다.

  좋은 기회를 신나게 태워버린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껴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고등학생 때 집필한 책들과 한국조류학회지에 투고한 논문을 들고 교수님의 방으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노크했다. 들어오라는 말과 함께 긴장한 인턴이 교수실에 입장했고 곧이어 교수님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행위가 이어졌다. 책을 건네자 약간 놀라신 교수님은 내가 쓴 책인지 확인한 다음 책을 펼치셨다. 슬프게도 한국어로 작성된 책이라 읽지는 못하셨지만 사진이 많아 내용은 쉽게 파악하신 것 같았다. 그중 팔색조의 번식 과정을 관찰하고 기록한 책을 보시고는 자료를 아직 갖고 있냐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하자 교수님께서는 팔색조 새끼의 식단에 대한 연구가 몇 개나 돼 있는지 검색하셨다. 놀랍게도 논문은 3개밖에 없었고 교수님은 모아둔 자료를 바탕으로 논문을 써보자고 하셨다. 대학원에 지원하기 전에 자료를 분석하여 논문처럼 한 번 써보라고 하셨다. 이것은 교수님과 나 사이에 비공식 입학시험이 됐다. 그렇게 입학시험을 통과하고자 하는 한 인턴의 노력이 시작됐다.


멸종위기 종인 팔색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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