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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류학자 May 15. 2023

대학원 연구실의 대학생 인턴 (2)

박새과 조류의 번식 생태 연구

이제부터 대학원 연구실에 대한 이야기 이므로 그전에 대학원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하려고 한다. 대학교를 졸업하면 “학사” 학위를 취득한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아는 “석사” 그리고 “박사” 학위는 대학원에서 취득할 수 있다.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대학졸업장, 즉 “학사” 학위가 필요하다. 석사 학위 과정은 일반적으로 2년 정도 걸리며 박사 학위 과정은 보통 3년 이상이 필요하다. 석사와 박사 학위 과정을 따로 진행할 수도 있으며 한 번에 진행하는 “석박사통합” 과정도 존재한다. 각 학위를 같은 대학에서 받을 수도 있고 모두 다른 대학교에서 받는 것도 가능하다. 대학생과 대학원생 모두 대학의 교수님에게 수업을 듣는다. 물론 수강해야 하는 수업은 대학생이 훨씬 많고, 수업내용 역시 크게 다르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은 지식 전달 위주라면,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은 보다 연구와 관련성이 높다.

  대학원생의 위치는 애매하다. 단순히 알려진 지식을 배우는 학생은 아니다. 그렇다고 경제적 활동으로 사회를 굴리는 직장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대학원생은 인간의 지식 범위를 확장하는 과학자가 되고자 하는 무언가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과학자라고 불리는 교수님들 아래에서 연구하는 방법과 자세를 배운다. 긴 시간이 흐른 후에 졸업논문을 쓰고 졸업발표를 통과한 다음에 과학자의 출발 선에 놓이게 된다.

  연구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던 대학생은 대학원생들 사이에서 연구실 생활을 시작했다. 상상한 생태학 연구실의 모습은 이러했다. 자주 야외조사를 나가며, 눈에 잘 띄지 않는 갈색셔츠를 입고, 동식물을 자주 만지고 접하기에 하루 종일 새를 볼 수 있는 천국.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생각보다 단순 노동이 많았고 주로 대학원생들의 일을 돕는 일을 했다. 무슨 일을 하는지 대학원생분들이 설명을 해주었지만 대학교 1학년의 지식으로는 크게 와닿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꿋꿋이 1학년의 여름을 버텼고 2학년 겨울 방학, 4학년 전체의 기간을 연구실 인턴으로 생활했다. 그 기간 동안 메뚜기의 점프 행동 촬영, 박새과 조류의 성별 구분, 까치의 번식 생태 조사, 새들의 학습 연구를 보조했고 여기서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박새는 우리나라 산과 공원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새이다. 숫자가 많은 동물은 연구 대상으로 선택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연구를 위해서는 여러 개체가 필요하기에 개체수가 많다는 것은 장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곤줄박이 역시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관찰되는 새이다. 특히나, 이 두 종은 번식연구에 적합하다. 나무로 만든 인공둥지가 공원에 설치된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충분히 크게 만들면 올빼미과 조류의 번식을 유도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설치된 인공둥지는 대형 조류가 아닌 박새, 곤줄박이, 쇠박새, 동고비, 흰눈썹황금새와 같은 소형 조류를 위한 것이다. 인공둥지는 연구자가 쉽게 내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자연 둥지를 찾는 수고를 덜어 시간을 아낄 수 있어 많은 개체에서의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연구실도 인근 산에 인공둥지를 설치하여 박새과 조류의 장기 번식 생태를 연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새 중 하나인 박새.


박새와 같이 우리나라 산과 공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곤줄박이.


인공둥지 (왼쪽)과 곤줄박이가 번식을 위해 이끼와 솜털을 둔 상태 (오른쪽)이다.


  박새와 곤줄박이는 봄이 되면 둥지로 사용할 공간을 찾는다. 자연스럽게 생긴 나무 구멍이나 돌 틈 그리고 우체통 같은 공간도 이들의 선택지가 된다. 먼저 바닥에 이끼를 쌓고 솜털 같은 부드러운 재료로 알을 낳는 자리를 만들며 번식을 준비한다. 둥지가 완성되면 박새는 8~12개의 알을 곤줄박이는 4~7개의 알을 낳는다. 알을 품고 새끼가 태어나고 부모새는 작은 벌레를 먹여서 새끼들이 키워낸다. 새끼들이 충분히 자라면 줄지어 둥지를 떠난다. 이러한 번식과정을 기록하여 장기적인 경향성을 확인하는 것이 연구실에서 진행하는 연구 중 하나이다. 나도 종종 대학원생을 따라 이들을 관찰했다.

  인공둥지 약 150개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넓게 설치돼 있었다. 이렇게 거리를 둔 것은 새들이 세력권 크기를 고려한 결정이었다. 우리가 집을 가지고 침입자가 들어오면 지키기 위해 싸우듯 새들도 마찬가지이다. 번식기에 둥지 주변으로 자신의 세력권을 세우고 같은 종이 들어오면 쫓아낸다. 자신의 새끼를 보호하고 먹이를 구할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활동하는 모든 지역을 보호하는 것은 아니고 그중 일부인 세력권만 보호하고 나머지 공간은 다른 개체들과 공유한다. 항상 같은 세력권 크기를 형성하는 것은 또 아니다. 서식지의 먹이 밀도, 포식자의 밀도 등에 따라서 그 크기를 조절하는 것이 알려져 있다. 아무튼, 이 말인 즉, 모든 인공둥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산을 타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출발 전에 준비물을 여러 번 확인하여 중간에 내려오는 일이 없어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났다.

  내가 맡은 일은 대학원생과 함께 산을 타며 인공둥지 속 모든 것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둥지재료인 이끼와 솜부터 둥지 구석에 자리 잡은 각종 절지동물도 기록했다. 새가 사용하지 않는 둥지에는 보통 그리마, 거미, 말벌이 자리 잡았는데 거미는 특히나 그 종류가 다양해서 흥미로웠다. 말벌은 집을 짓는데 끝까지 완성한 경우는 보지 못했다. 4월 즈음에는 새들이 알을 낳아 그 숫자를 기록하는 것이 주 일상이었다. 정확한 숫자를 파악해야 해서 여러 번 확인했다. 보통 하루에 알 하나를 낳기에 알 숫자로 언제부터 알을 낳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새들이 인공둥지에 이끼를 모아두면 그 둥지를 호박벌이 훔쳐서 보금자리로 사용하기도 했다. 호박벌은 이끼 내부에 파고들기에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이때 알을 확인하기 위해 손을 넣으면 공격당할 수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호박벌은 외부에 충격이 가해지면 경고음을 낸다는 것이다. 인공둥지 겉을 두드리면 우리가 아는 그 벌 소리를 내기에 호박벌의 존재를 알아챌 수 있었다. 거기에 추가로 무언가를 행동하지 않는다면 호박벌이 인공둥지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겁이 많았던 나는 성실하게 둥지를 두르려 그들의 존재를 확인했다. 벌 소리에 두려움이 느끼게 프로그래밍된 나는 벌 소리가 나면 빠르게 둥지로부터 도망쳤다.

  알과 부화한 새끼들을 먹기 위해 온 뱀, 청설모 그리고 어치와 종종 마주쳤다. 인공둥지의 입구가 박새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라 그 보다 큰 어치와 청설모는 내부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지만 뱀은 둥지 내부에 들어갈 수 있어 알 혹은 새끼를 쉽게 먹는다. 뱀은 둥지 안에 있는 알과 새끼를 모조리 삼키기에 피나 알 껍질 같은 흔적이 없어 쉽게 포식자를 동정할 수 있었다. 내가 인턴을 시작한 2015년에만 해도 연구를 진행하는 산에는 뱀이 많지 않았다. 일단 뱀과 마주치는 일도 없었고 둥지가 뱀에 의해 포식당하는 경우도 적었다. 2019년이 되자 등산로에서 뱀을 마주치는 일이 잦아졌고 둥지를 열었을 때 포식 중인 뱀과 마주치기도 했다. 어떤 둥지에는 뱀이 2마리가 들어가 있어 크게 놀라기도 했다. 뱀이 둥지를 찾는 능력 혹은 위치를 기억하는 능력은 상당히 뛰어났는데 뱀이 주변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여 건너편 계곡으로 옮겨도 금세 자신이 공격하려던 둥지에 나타났다. 새끼를 연구하는 대학원생들은 많은 새끼들이 살아남아야 신뢰성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기에 최소한 그들에게 뱀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존재임이 분명했다. 그와 별게로 뱀의 개체수 증가와 그에 따른 인공둥지를 사용하는 새들의 번식성공률 감소 그리고 그에 반응하는 새들의 행동 양상은 새로운 연구 주제가 될 수 있었다.


  산으로 연구를 나갈 때면 등산복과 등산가방 그리고 등산화로 무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새를 보러 다녔기에 익숙한 복장이었다. 가방에는 물과 간단한 간식 그리고 연구장비를 챙겼다. 연구장비로는 새들의 크기를 측정할 저울과 자 그리고 피를 채집하는 도구들이 있었다. 그렇다 새끼들의 피를 뽑아야 했다. 처음에는 피를 뽑으면 죽는 게 아닌가 걱정할 정도로 새끼새가 작았다. 새끼들의 피는 이들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성별을 확인하는 데 사용했다.

  새의 생태 연구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고려되는 요소 중 대표적인 것이 성별이다. 특정 성별의 개체가 수행하는 역할이 있고 그로 인해 초래되는 결과적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붉은부리큰제비갈매기는 수컷이 새끼들의 장거리 이주 (migration)에 동행한다 (참고문헌 1). 새끼들은 그다음 해에도 이전에 성체 수컷과 함께 사용한 이동경로를 사용했는데 이로서 새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생존확률이 높은 경로로 이동한다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여러 개체에 위치추적 장치를 부착하고 장기간 자료를 축적해야만 알아낼 수 있는 결과이다.

  번식기에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암컷이 알을 낳는다는 것이다. 암컷은 알을 낳으면서 에너지를 사용하기에 다른 곳에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감소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한 번에 너무 많은 알을 낳으면 면역력이 떨어져서 쉽게 병원체에 감염되는 등 생존에 불리할 수 있다. 반면 수컷은 암컷이 많은 알을 낳아도 적어도 새끼들이 부화하기 전에는 건강 상태에 큰 변화는 없다. 이렇듯 생태 연구에 있어서 성별 구분은 기본이라 볼 수 있다.

  성별을 구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만약 공작처럼 암수의 외형에서 차이가 있다면 아주 쉽게 성별을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외형으로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경우에는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번식기에 수컷만 내는 소리를 통해서 수컷인지 판별이 가능한 경우도 있는데 다만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암컷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우리가 관찰하지 못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새끼 단계에서 표현형적 차이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종은 사실상 없다. 이러저러한 상황에서 현재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개체의 성염색체를 파악하는 것이다.

  성염색체는 종의 성별을 결정하는 염색체로 우리 인간의 경우 여자는 X염색체 2개, 남자는 X염색체 하나와 Y염색체 하나를 가진다. 반면 조류에는 수컷이 한 쌍의 Z염색체, 암컷이 Z와 W염색체를 가진다. 그렇기에 W염색체가 존재한다면 암컷, 없다면 수컷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DNA 서열을 파악하는 DNA sequencing기술로 W염색체에 위치한 서열의 존재 여부를 알아낼 수 있다. 또한, DNA서열 중 원하는 부분을 복제하는 기술인 중합효소연쇄반응 (Polymerase chain reaction, PCR)을 사용하여 W염색체에 위치한 DNA서열 조각이 복제가 되는지 여부로 W염색체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

  나의 주요 인턴 일과 중 하나는 중합효소연쇄반응을 사용하여 새끼의 성별을 동정하는 것이었다. 채취한 새들의 피에는 핵을 가진 백혈구와 적혈구가 존재한다 (인간의 적혈구에는 핵이 없다). 실험의 첫 과정은 세포를 부수고 핵을 부순 다음 그 안에 있는 유전물질 (DNA)만을 분리하는 것이다. 그다음, 중합효소연쇄반응을 통해 유전물질에서 사전에 고른 성염색체의 DNA 조각을 복제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복제된 조각을 크기에 따라 분류하여 우리가 고른 DNA조각이 복제됐는지 확인한다. 이 전체의 과정을 하루에 2번 정도 반복할 수 있었다. 같은 방법과 재료를 사용해도 결과가 깔끔하게 나오는 날이 있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었다. 미세한 손놀림과 정확성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시간이 걸렸다. 실험은 마치 요리와 같았다. 요리전문가가 알려준 방식대로 따라 해도 그 맛은 같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정확한 재료 손질, 양, 재료를 넣는 시기 등 작은 차이들이 모여 큰 차이를 만든다. 실험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빨리 많은 결과를 내고 싶어 한 번에 48 샘플을 동시에 실험했다. 결과가 깔끔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빨리” 그리고 “많이”에 초점을 맞추니 오히려 다시 실험을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생겨 결과적으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사용해야 했다. “정확하게”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욕심내지 않고 한 번에 12 샘플만 실험하기로 스스로 타협했다.




참고문헌

1. Byholm, P., Beal, M., Isaksson, N. et al. Paternal transmission of migration knowledge in a long-distance bird migrant. Nature Communications 13, 156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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