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류학자 Jun 25. 2023

대학원에서의 첫 논문 (1)

부모 팔색조의 지렁이 손질 행동

동물행동 연구는 나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이다. 말이 통하지 않기에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 없어 어렵지만, 그렇기에 연구하는 과정이 정말 재밌는 분야이다.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그 변화와 경향성을 파악한다.


  부모 팔색조는 새끼에게 지렁이를 주로 먹이며 기른다. 한 번에 5~6마리의 새끼들은 기르며, 새끼들은 부화 직후부터 둥지를 떠나기 전까지 대략 1000마리의 지렁이를 먹는다. 부모가 제공한 지렁이는 가끔 잘려있기도 했다. 나는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부모새가 지렁이를 자르는 기능에 대해 연구하고자 했다. 


  여기서 자르는 이유에 대해 연구한다고 말하면 정확한 표현이 아닐 수 있다. 동물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생각"하여 행동한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물은 우리 인간과 같이 "생각"하여 행동한다고 보기 어렵다. 도마뱀이 더울 때는 햇빛 아래로, 추울 때는 바위 사이로 위치를 옮기는 행동을 예시로 들어보자. 도마뱀이 '더우니 온도를 낮추기 위해 바위 사이로 이동해야겠구나~'하고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체온이 올라간 상황에서 햇빛을 피하고 그늘로 이동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생각하여 행동하는 것이 아니기에 행동의 이유나 목적에 대해 연구한다고 표현하기보다, 행동의 기능에 대해 연구한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간단한 설명을 하는 경우에, 이유나 목적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부모 팔색조가 새끼들을 먹이기 위해 지렁이와 육상플라나리아를 사냥했다. 부리 왼쪽에서 3번째에 위치한 지렁이의 경우 잘려 있다 (절단면이 보인다).




부모 팔색조의 지렁이 손질 행동(여러 조각으로 자르기)에 대해 4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1. 큰 지렁이를 삼키지 못하는 작은 새끼가 먹이를 심킬 수 있게 하는 것.

  2. 잘게 잘라 새끼가 먹이를 빠르게 삼킬 수 있게 하여, 둥지 입구에 머무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기능일 것. 이는 포식자에게 들킬 가능성을 줄여줄 수 있다.

  3. 사냥한 지렁이가 멀리 도망가지 못하도록 상처를 입히거나 기절시키는 기능일 것. 여러 마리를 사냥한 다음 한 번에 둥지로 이동할 수 있다.

  4. 둥지로 다시 돌아가는 비행의 효율을 위한 것. 이 가설은 길게 늘어진 지렁이를 물고 비행한다면 이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는 가정이 깔려있다.


  제시된 4가지 가설은 서로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1번의 기능을 하면, 동시에 2번의 기능도 달성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 어떠한 가설이 타당한지 주장하기 위해서는 상황을 하나하나 컨트롤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실험을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 관찰데이터만 가지고 있었기에, 위의 가설들을 주장하고 보유한 데이터를 활용해 가장 그럴듯한 가설이 무엇인지 주장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

이전 10화 팔색조 논문 손보기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