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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나무 Oct 26. 2023

산꼭대기 위의 집 4화

염소 이야기

  다음에 우리 집에 등장한 동물은 흑염소 세 마리였다. 배수지 주변에 빙 두른 철망에 쇠사슬로 묶인 염소들이 움직일 때마다 목덜미에서 방울 소리가 났다. 염소들은 산에 지천이었던 아카시아 잎을 잘도 뜯어먹었다. 세 마리의 생김새가 조금씩 달랐는데, 특징을 잡아 통통이, 날씬이, 얌전이라고 이름까지 지어줬을 만큼 나는 염소를 상당히 예뻐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염소들을 찾아 그 앞에 가서 이름을 부르며 혼자 대화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염소가 내 말에 반응할 리 없지만, 그 시간이 참으로 재미있었다.


  동물이 먹이를 받아먹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기특하고 신기하지 않은가. 나도 그랬다. 염소들이 매일 알아서 풀이며 나뭇잎을 뜯어먹었지만 꼭 내 손으로 먹이를 주고 싶었다. 염소 가까이 다가가 철망 사이로 보이는 아카시아 잎을 한 줄기 뜯어냈다. 나는 통통이보다는 날씬이와 얌전이에게 먹이를 더 주고 싶었다. 통통이는 매일 제일 많이 먹고 점점 더 통통해져서 다른 염소 두 마리가 더 먹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날씬아, 여기, 먹어.” 날씬이가 내 손에 있던 잎사귀를 빠르게 받아먹는 순간 흠칫 놀라기도 했지만 신나는 마음이었다. 좀 더 줘도 될 것 같았다. 아카시아 줄기를 몇 개 더 뜯었다. 이번엔 얌전이에게도 주려고 했다. 하지만 얌전이는 내가 부르는 소리에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통통이가 나타났다. 내 눈에 최강자처럼 보이던 통통이에게 아카시아 줄기를 다 먹여주었다. 아무래도 날씬이와 얌전이에게 줄 먹이가 더 필요했다. 까치발을 들고 조금 더 높이 손을 뻗은 순간 “아악!” 소리를 질렀다. 그물 앞 바닥에 있던 커다란 배수 구멍에 왼쪽 다리가 허벅지 끝까지 낀 채로 빠지고 말았다. 참으로 아프고도 무섭고 난감한 상황이었다. 혼자서는 다리를 뺄 수 없었는데, 다행히 큰삼촌이 나를 구하러 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너무나 놀라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고, 왼쪽 허벅지 양쪽으로는 빨간 줄이 몇 개 그어져 있었다. 괜한 짓을 해서 말썽을 피웠다고 혼날까 봐 엉엉 울지도 못하고 놀란 마음을 애써 감추었다. 그 뒤로는 염소들에게 아카시아 잎사귀 주는 일을 조심하게 되었다.


  몇 달 뒤, 통통이가 식탁에 올랐다. 할머니는 통통이를 잡아 털을 그을리고, 내장을 다듬고, 고기를 삶았다. 할머니가 고기를 썰다 도마 위에 있던 콩팥과 염통을 내게 먹으라고 했다.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좋지는 않았지만 혼날까 봐 받아먹었다. 온 식구가 염소 고기를 먹었다. 나도 소금에 찍어 먹었다. 분명 통통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비겁하게 모르는 고기 대하듯 했다. 먹기 싫다는 내색도 하지 못하고 할머니께 혼날까 봐 주는 대로 꾸역꾸역 다 받아먹고 나니 통통이에게 미안했다. 알고 보니 염소들은 오래 편찮으셨던 할아버지의 몸보신 용도였다. 그 뒤로 날씬이도, 얌전이도 차례차례 같은 길을 걸었다. 어른이 되고서 몽골에 갔다가 염소 고기를 먹은 적이 있다. 어렸을 때 맡았던 염소 고기 냄새가 났다. 먹기 싫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도 덩달아 떠올랐다. 흑염소 세 마리에 대한 아련하고도 미안한 마음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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