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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나무 Oct 26. 2023

산꼭대기 위의 집 5화

오리 이야기

  마당 수돗가 근처에 묶여있던 털이 새하얀 오리는, 가장 마지막에 우리 집으로 오게 된 동물이었다. 다른 동물은 여러 마리인데 오리는 한 마리뿐이었다. 어디론가 가고 싶어도 발이 묶여 갈 수 없는 오리가 불쌍하면서도, 가까이서 구경하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오래 보고 있기도 했다. 오리에게는 꽥꽥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나는 이 오리의 운명도 닭이나 염소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름을 지어주고도 할머니께 혼날까 두려워 염소를 비겁하게 먹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꽥꽥이만큼은 절대 먹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꽥꽥이가 저녁 식탁에 올라온 날, 나는 한 젓가락도 대지 않았다. 안 먹겠다는 말은 여전히 못 했지만, 다른 반찬만 조용히 먹고는 마당으로 피하는 것으로 꽥꽥이에 대한 내 마음을 지켰다. 이제 마당에는 꽥꽥이가 없었다. 염소를 먹었을 때처럼 부끄러운 마음은 아니었지만 나 혼자만 남아 썰렁한 마당에서 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좀 전까지도 꽥꽥거리며 놀던  꽥꽥이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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