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제 보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딜라이트R Nov 06. 2023

마음먹은 건 다 해요

되겠어? 되었어.

뭐 말하기가 무서워. 그대로 될까 봐ㅎㅎ


어느 날, 부서원 마크가 내게 결재를 받고 자리로 돌아가며 웅얼거렸다.

마크는 아이디어가 끊이지 않는다. 전략을 수시로 바꿔나가 끝내 성취를 해내는 직원이다. 신입직원이었던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 의견들이 바로 수렴되어 실무에 적용되는 것이 많아지자 갑자기 높은 책임감을 느꼈다. 내 경력에 이런 말을 하고 이렇게 일을 벌이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이 입 밖으로 삐져나와버린 것 같다.


몇 년 전, 어느 팀원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게 되겠어? 말로만 그렇게 하는 거겠지."


-

2019년도 봄.

야외에서 모금을 하는 직원들은 50kg에 가까운 캠페인부스(업무 물품들)를 파란색 이사박스에 담아 끌고 다녔다. 현장에서는 부스를 설치해서 일을 하는데 그노무 파란 박스가 옆에 놓여 어지간히 눈에 거슬렸다.

파란 박스 위에 글씨를 쓸 수 있는 테이블 판을 대충 올려두고 모금을 하는 직원도 있다.

꼬질꼬질하고 너덜너덜한 형편없는 부스인데, 신기하게 잘한다.


"단체에서 기부금을 지원대상자에게 모두 사용해요. 예산을 최대한 아끼느라 허름한 부스를 활용하고 있어요."


이게 더러운 부스에 대한 우리의 핑계였다.


짐 이동, 부족한 짐, 짐이 무거워, 짐 가져가세요, 짐 있어요?, 짐, 짐, 짐...

직원들은 업무물품을 '짐'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지방에 있는 지부와 다른 부서에서는 우리 팀을 '서울캠페인'이라 불렀다.


거슬려...

말은 생각의 끝이라고.

생각을 바꾸기 위해 말부터 고쳐야겠다 싶었다.


"오늘부터 '짐'이라는 말 금지, '물품'이라고 표현합시다. 그리고 '부족하다'는 말보다는 '필요하다'라고 말하기로 해요."

"우리 조직은 서울지부, 서울 캠페인이 아닙니다. 지부와 동격이 아니에요. 우리는 본부입니다. 우리는 서울에 한정되지 않아요. 우리나라 모든 지역은 물론, 해외사업장에서도 업무를 할 수 있어요. 본부로서 실력과 책무감을 더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모든 지부를 포용할 수 있게 될 겁니다. "


어느 날 데이빗이 물었다.


"팀 이름 바꿀래? 권익옹호팀이나.. 뭐 좋은 게 있을지 생각해 봐."


몇 주를 고민하다가 답변을 드렸다.


"데이빗, 우리 팀 이름 바꾸지 않겠습니다. 지금 팀명을 유지하면, 권익옹호라는 콘텐츠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어요. 가둬두지 않을 거예요. 모든 콘텐츠를 기획하고 활용할 거예요. 여태까지 조직 내 모든 직원들이 우리를 단순 거리모금만 하는 팀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제부터 하나씩 바꿔나갈 거예요. 저는 모든 직원들을 기획자로 성장시킬 겁니다. 그리고 현장에 있는 부스 싹 바꿀 거예요. 구질구질해서 안 되겠어요."


당시 팀에서 20kg 정도 되는 최신부스를 몇 개 사용하고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가벼워서 잘 부서지고 고장이 잦았다. 그래서 수명이 3개월 정도라 예산이 어마어마하게 들 것이라는 피드백이 있었다.


그래도 해보자. 거리모금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좋지 않다.

이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개선하려면 먼저 부스가 청결해야 하고, 타단체와 차별화된 전문성과 진실성을 홍보해야 한다. 시민호감도를 높이기 위해 미디어채널에 최대한 우리를 노출시켜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무엇보다도 직원들이 업무에 대한 자긍심이 너무 낮았다. 조직 신뢰도를 높이고 명예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겠다는 다짐을 단단히 했었다.


대대적인 개편을 시작했다.

최신 부스 디자인을 브랜드 관리 홍보위원장님을 찾아가 부탁드렸다.

위원장님은 나의 부탁을 진심으로 환영해주셨고, 전보다 훨씬 세련되고 품격있는 디자인으로 직접 해주셨다.


네오와 매니저들은 이렇게 예산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이래도 되는가 싶은 생각이 자꾸 드는지 계속 머뭇거린다.


"괜찮아. 저만 믿어요. 결재 올려!!!!"


경영진을 설득하고 부스를 모조리 샀다.

1달 내내 현장에 직접 찾아가 50kg의 쇠부스들을 최신부스로 교체했다.


놀란 팀원들이 말한다.


"이게 되네요. ㅇ.ㅇ"


다음은 유지관리다.  

먼저 최신 부스 수명이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이유를 찾았다. 빠른 퇴근을 위해 급하게 물품을 정리하는 게 원인이었다. 야외근무 특성상 전 날 다른 직원이 정리해 둔 물품을 오늘 내가 사용하는 업무구조라 어떻게 정리해도 '아 몰랑' 하면 끝이었다.


"새 부스로 교체할 때 칭찬 릴레이를 하자요!"

"그게 뭐예요?"

"아침에 출근해서 물품이 잘 정리되어 있으면, 전 날 근무했던 직원을 공개적으로 칭찬해 주는 거예요. 잘 정리된 물품을 사진 찍어 올리면서!"

"오 괜찮은데요?"

"일정기간 동안 가장 많은 칭찬을 받은 직원에게 상도 주는 거죠! 어때요?"

"좋아요! 한번 해봐요!!"


효과는 엄청났다. 3개월 유지될 거라 예상했던 부스를 6개월 넘게 사용했다.

하루를 칭찬으로 시작하니 팀 분위기도 무척 밝아졌다.


그 해 우리팀은 역대 최고성과를 기록했다.

팀원들은 여태껏 경험하지 못했던 대외행사를 세 번 이상 해내었고, 모든 행사는 다양한 홍보채널을 통해 노출되었다. 소식지에는 우리 직원 인터뷰 내용을 실어서 우리 팀 업무에 대한 대내외 인식개선을 위한 노력을 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었지만, 오늘도 상상한다.


스타벅스 프리퀀시 이벤트 때 줄 서는 것처럼 우리 부스 앞에 줄 서게 하자.

우리가 나타나면, 시민들이 먼저 반갑게 찾아와 나눔에 참여하기 위해 줄 서서 기다리게 될 거야.

우리는 시민들과 기쁘게 소통하며, 소외된 이웃들의 상황을 공감할 수 있게 돕고 서로 환대하는 사회로 만들어가는 통로역할을 넉넉히 해낼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어서 오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