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의 갓 짠 올리브유 향기가 그리워질 때
내가 어릴 적 처음 접한 올리브는 피자헛 피자 위 검은색 올리브였다. 늘 올리브를 빼고 먹었는데, 피자의 맛을 방해하는 생소한 향기와 맛, 질감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서브웨이에서 주문할 때도 늘 '올리브 빼고 다 넣어주세요'를 외쳤다. 굼굼한 향기와 아삭거리지 않고 물컹한 식감이 맘에 들지 않았다. 올리브유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에선 나지 않는 식재료여서 나와 체질이 맞지 않았던 걸까, 어릴 적부터 먹었던 음식이 아니라서 도저히 어른이 되어서도 친해질 수가 없었던 걸까. 올리브는 내게 참 받아들이기 어려운 식재료였다.
그런데, 이제껏 나와는 먼 식재료였던 올리브유가 튀니지에서는 늘 식탁에 있었다. 튀니지의 모든 음식점 테이블에는 기본적으로 놓이는 것들이 있는데, 올리브유, 올리브 절임과 하리싸다. 처음에 몇 번 업무 식사를 하고, 튀니지 사람들과 식사를 하게 되면서 그들이 먹는 대로 따라먹어보았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튀니지 올리브에 대한 찬사를 이어나간다. 갓 짠 튀니지 올리브를 먹어봐야 한다며 꼭 농장에서 직접 생산한 걸 먹어보라고 권한다. 튀니지 올리브가 최고라고.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따라서 먹어본다. 식전 빵이 나오면 올리브유를 접시에 부은 다음 소금과 후추로 살짝 간을 하고 찍어 먹는다. 그리고 와인이나 맥주를 시키면 나오는 올리브 절임을 한입 베어문다. 심심하다 싶으면 튀니지 고추장인 하리싸를 한 숟갈 접시에 덜어서 그 위에 올리브유를 살짝 뿌린 다음 빵에 발라 먹는다. 살짝 매콤한 하리싸와 쌉싸르한 올리브유가 묘하게 잘 어울린다. 그리고 다시 짭조름하게 잘 절여진 올리브를 하나 베어 물면 입이 다시 상쾌해져서 메인 요리를 먹을 준비가 된다.
그리고 메인 요리가 느끼해서 깍두기나 단무지가 생각날 때 올리브 절임을 하나 베어문다. 그 올리브가 김치 역할을 톡톡히 한다. 향이 좀 부족하다 싶으면 파스타에 올리브유를 더 넣어먹거나 하리싸를 더 넣어 먹는다. 내 테이블의 올리브는 늘 빨리 없어져서 얼른 웨이터를 불러 올리브를 더 달라고 한다. 그리고 메인 요리를 다 먹고 올리브 한알을 더 먹는다. 이렇게 튀니지의 식사는 올리브로 시작해서 올리브로 끝난다.
그렇게 나는 올리브와 친해져서 내 손으로 올리브를 사게 되었고, 올리브는 집에 늘 떨어지지 않는 식재료가 되었다. 한식을 구하기 힘든 튀니지에서 올리브 절임은 김치가 되어 주었고, 올리브유는 참기름이 되어 주었다. 마음 붙일 곳을 찾은 느낌이었다. 브랜드마다 맛이 달라 내 취향을 찾아가는 재미도 있었다.
내 취향은 다음과 같다. 올리브 절임은 색깔이 초록색으로 더 선명할수록 내 취향이었다. 씨를 빼둔 게 편하긴 하지만 씨가 그대로 있어서 내가 이로 발라먹는 걸 더 선호했다. 꼭 그린 올리브여야만 했다. 올리브유는 쌉싸르하되 음식맛을 해칠 정도의 쓴맛은 아니어야 했고, 색이 노랗기보다는 초록에 가깝고 너무 투명하지 않아야 했다.
그러다 한 번은 올리브 농장에서 밥을 먹은 적이 있는데, 정말 집에서 갓 짠 올리브유로 깊은 맛이 달랐다. 튀니지 동료들의 말이 정말이었다. 기름에서 이렇게 상큼하고도 쌉싸르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본식이 나오기도 전에 식전 빵 한 바구니를 올리브유로 다 비웠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 튀니지 올리브를 못 잊고 백화점 식품관을 전전하며 내 취향의 올리브들을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아직도 맛있는 빵을 먹거나 서양 음식을 먹고 입이 텁텁할 때 튀니지의 올리브 절임과 올리브유를 떠올린다. 신선하고, 쌉싸르하지만 깊이가 있고 묵직한 올리브. 이나라 저나라 옮겨 다니면서 사는 노마드는 음식으로 그 나라를 추억하기도 한다. 그리고 몇 년 동안 한 나라에 지내면서 입맛이 바뀌기도 한다. 예전에 느꼈던 올리브의 굼굼한 냄새가 이제는 달큰한 향기로, 뭉근한 식감은 이제는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게 느껴진다.
나의 입맛에 새겨진 튀니지 올리브들이 가끔 생각나서 먹고 싶어 질 때가 있다. 갓 구운 따뜻한 빵과 오묘한 초록빛의 튀니지 올리브유가 생각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