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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길었던 튀니지 꾸스꾸스 적응기

내 튀니지 단골식당, 잘 있으려나

by 월급쟁이 노마드

프랑스에서 처음 꾸스꾸스를 맛보았다. 그 당시 주변에 아랍에서 온 친구들이 많았는데 모로코 식당에서 파티를 하자고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갔으나 타진과 꾸스꾸스를 깨작깨작대다가 끝났다. 모로코 타진은 슴슴했고 호박, 가지, 양고기가 애매한 온도로 뭉근했고, 쿠스쿠스는 날아다니는 좁쌀 같았다. 무슨 맛인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이게 나의 첫 꾸스꾸스 경험이었다.

그 이후 프랑스에 있는 동안 다시는 꾸스꾸스를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 뒤 튀니지에 일을 하러 가게 되면서 업무 오찬, 만찬을 할 기회가 많아졌고, 꾸스꾸스를 다시 먹게 됐다. 업무 파트너가 이게 튀니지식 꾸스꾸스라고 계속 권하는데 거절하긴 어려웠다. 우리도 외국인이 한식을 맛나게 먹으면 호감도가 상승하듯 튀니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업무 파트너로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하는 이상, 맛이 있으나 없으나 먹어야 하는 것이다. 맛있다는 리액션과 함께.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이 있었다. 난 이때까지 꾸스꾸스가 곡물의 한 종류인 줄 알았는데, 파스타의 한 종류였다. 물론 내가 무지해서 뒤늦게 알게 된 것이기도 하지만 파스타라고 생각하는 순간 더 입맛이 떨어졌다. 그렇게 6개월 정도 꾸스꾸스의 참맛을 알지 못한 채 괴로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방 출장을 가게 됐다. 아침 6시에 출발해서 차로 3시간 꼬불꼬불 산길을 가서 회의를 하고, 현장도 가다 보니 아침, 점심을 먹지 않은 채로 오후 3시까지 일을 하게 됐다. 마지막 마을에 들렀는데 동네 이장님이 꾸스꾸스를 준비해 주셨다. 센스 있는 나의 동료가 미리 말을 해둔 건지 아니면 예의상 준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마음이 감사했다.


새벽 6시에 출발해 오후 3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얼마나 배가 고픈 상태였을지 상상이 되는가. 흙이라도 씹어먹을 기세였다. 그리고 복스럽게 담아주신 꾸스꾸스를 한입 먹는 순간, 나는 꾸스꾸스와 드디어 화해를 한 기분이었다. 양념이 잘 배어든 양고기, 잘 익은 감자와 당근, 구운 고추의 매콤함과 기름기와 수분기가 적당히 잘 섞인 꾸스꾸스, 감칠맛과 묵직함까지 정말 환상적이었다.(이 글을 쓰면서도 침이 고인다) 업무로 간 것임에도 불구하고 세 그릇을 연신 비웠다.


그 출장 이후로 난 튀니스의 꾸스꾸스 맛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고급 레스토랑부터 휴게소 근처의 노포까지 두루 섭렵을 하였고, 최종적으로 두 곳의 쿠스쿠스 식당을 단골 식당으로 정했다. 주말이면 나와 맛집 탐방을 하던 동료가 있었는데, 그 동료에게도 감사함을 전해야 할 것 같다.


첫 번째는, La Marsa에 있는 Couscous Tree(불어로 L'arbre a Couscous)다. 거의 한 달에 3-4번을 갈 정도로 좋아한 집이었는데, 지금도 구글에 검색해 보니 영업 중이고 평점도 4.8점이다. 여기의 매력은 꾸스꾸스에 국물이 잘 배어 있어 촉촉하다는 것인데, 한입을 먹자마자 꾸스꾸스에 배인 양고기 향과 채소 향이 훅 느껴진다. 소박한 식당이지만 내게는 최고의 꾸스꾸스 식당이었다.

(https://share.google/wPBl9jZrzzma1jiay)


두 번째는, Medina에 있는 Dar el Jeld인데 호텔, 스파, 레스토랑이 있는 곳으로 꾸스꾸스 이외에도 튀니지 음식을 정갈하게 내놓는 곳이다. 저녁에 가면 가끔 튀니지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데, 한국인이 보이면 애국가를 연주해 주기도 한다. 손님들이 올 때 주로 가는 곳인데 봄부터 가을까진 테라스에 앉아서 식사를 할 수도 있는 곳이다. 정갈함과 그 분위기에 음식맛이 더 좋아지는 곳이다. 손님 중에 열이면 열, 다 만족했던 곳이었다.

(https://share.google/VCWrwti4vwNlI7sg5)


몇 년이나 지난 기억을 가지고 꾸스꾸스 단골 식당을 추천하는 게 이상할 수도 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식당이 건재하다면 맛집인걸 이미 증명한셈 아닐까. 지금도 가끔 속이 헛헛할 때면 꾸스꾸스가 생각난다. 꾸스꾸스는 사실 고칼로리 음식이다. 고기가 들어가서 단백질은 물론, 속이 깊은 접시에 한가득 꾸스꾸스가 담겨 나오기 때문에 탄수화물 그 자체다. 그래서 늘 점심때 꾸스꾸스를 먹으면 사무실에서 졸음이 쏟아졌지만 먹고 나면 일주일은 든든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좋아하던 식당을 가는 길이 아직도 선명하다. 튀니지에 있는 기간 동안 내 보양식이 돼주었던 꾸스꾸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날이면 꾸스꾸스를 숟가락으로 더 열심히 퍼먹었고, 그러고 나면 부풀어 오른 배만 남고 걱정과 고민은 없어졌다. 노마드는 늘 새로운 정착지에 갈 때마다 소울 푸드를 정하곤 한다. 그 도시에서 겪는 고단함과 피곤함을 그 도시의 음식으로 잊으려 한다. 튀니지에서는 그게 꾸스꾸스였다.


p.s. 한국에서 꾸스꾸스가 그리울 때면 서촌의 꾸스꾸스를 방문해서 그리움을 해소했다. 혹시 튀니지의 꾸스꾸스가 궁금하다면 가볼 것을 추천하지만, 난 6개월의 적응 시간이 필요했기에 호불호가 갈린다는 점은 미리 말씀드린다.

(https://share.google/fjE1jIjc9pZVPqGd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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