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 즐기는 소소한 행복
매주 꾸준히 마트에 꽃을 사러 간다. 생필품과 식료품은 토요일에 한꺼번에 장을 보고, 주중에 필요한 것들은 배우자가 내가 일하고 있는 사이에 사둔다. 마트 영업시간이 18시까지라 17시 반에 퇴근하는 직장인이 장을 보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시간을 쪼개어 매주 마트에 가는 이유는 단 하나다. 마트에서 파는 꽃다발을 사기 위해서다.
유럽은 어딜 가나 마트에서 꽃을 판다. 스위스 역시 계절에 따라 다양한 꽃을 늘 계산대 옆에 진열해 두는데, 안 살 수 없게 예쁘게 놓아둔 데다 스위스 물가에 비해 가격도 꽤 합리적이다. 튤립 한 다발, 스무 송이가 10프랑이니 한국보다 오히려 저렴한 편이다. 집에 꽂아 두면 일주일은 거뜬히 갈 정도로 싱싱하기도 하다. 물론 매일 물을 갈아주고 영양제도 타 주며 조금 정성을 들여야 하긴 하지만.
꽃을 사러 가는 길은 늘 마음이 싱그러워진다. 오늘은 어떤 꽃들이 나와 있을까. 봄이니까 튤립이면 좋겠다. 아니면 두 다발을 사서 집 여기저기에 꽂아 둘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직장에서 있었던 스트레스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마트에 도착하면 형형색색 아름다운 꽃다발들이 진열되어 있다. 갑자기 모든 꽃다발을 사고 싶어진다. 이리저리 들어보고 가격도 살펴보고 지난주와 겹치지 않게 다른 종류를 고른다. 단순한 과정같지만 아주 심사숙고 해서 고른다.
그리고 그 꽃을 들고 집으로 오는길은 더 즐겁다.
퇴근길에 꽃 한다발을 사서 집에 가는 멋진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이 기분을 참 좋아한다.
집에 돌아오면 꽃잎을 다듬고 화병을 깨끗이 씻는다. 영양제를 풀어 물을 채운 뒤, 어설프게나마 배운 꽃꽂이 실력으로 이리저리 꽃을 꽂아 본다. 식탁 위와 TV 앞 탁자에 꽃을 올려두면 집안이 한결 환해진다. 고작 10프랑짜리 꽃 한 다발로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니, 그리고 일주일 간 틈틈이 꽃을 보며 행복들을 쌓아간다.
물론 시들어 버린 꽃을 치울 때면 이럴 바에야 화분을 하나 살까 싶기도 하지만 매주 마트에서 꽃다발을 사는 재미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직장과 가정에서의 책임감과 반대로 꽃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일주일만 즐기고 다른 꽃으로 바꾸는 이 가벼움도 나는 좋아한다. 절정을 바라보고 그것을 치워 버릴 때 느껴지는 묘한 개운함이랄까.
물가 비싼 스위스에서 마트에서 꽃을 사는 일은 어느새 하나의 취미가 되었다. 삭막하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 찾은 작은 즐거움이다. 이번 주에는 옅은 핑크빛 튤립 한 다발을 샀다. 다음 주에는 또 어떤 꽃을 사게 될까. 벌써부터 조금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