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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환 May 24. 2024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 저널리스트 룰루 밀러의 저서로, 생물학자 데이비드 조던의 생애와 업적을 중심으로 세상의 혼돈 속에서 질서는 무엇인가? 에 대한 고뇌를 담은 철학에 가까운 책이다. 과학과 철학이 만나는 곳에서 우리의 현실에 대한 갈망과 의문을 탐구한다. 그로써 우리가 세상의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하는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제목부터가 눈길을 끌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다소 역설적인 제목으로, 사람마다 해석하는 여지 조금씩 다르다.


 저자는 물고기를 분류하는 생물학이 실제로는 모호하고 인위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혼돈과 질서', '집착과 상실', '우생학과 사다리'라는 큰 개념이 등장한다.


 플롯의 구성은 데이비드의 물고기 연구과정 속 혼돈과 질서라는 개념이 나오다가, 갑자기 저자의 사랑 이야기로 전환되는데, 이는 꽤나 뒤죽박죽한 흐름으로 느껴진다. 줄거리는 나에게는 큰 혼돈을 주었지만, 서평을 작성할 때 비로소 질서를 찾아가며 꽤나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밀러는 데이비드의 삶을 통해 과학과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다. 그는 어류학자로서 수많은 종을 분류하고 기록했다. 이 분류 과정에서 밀러는 우리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는 과정이 무엇인지를 알리고자 했다.



물고기를 분류하고, 이름을 지어주며 겪은 생물학 연구에서 철학적 성찰을 느끼다.


 그는 과학적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했지만, 결국 과학으로 풀어보는 자연의 경계는 인간이 설정한 인위적 개념일 뿐임을 깨닫는다. 이는 우리가 흔히 받아들이는 '질서'라는 것이 사람에 따라 얼마나 주관적이고 변덕스러운 것인지를 상기시켜 주기도 했다. 


 법과 도덕에 대한 정의, 선과 악의 기준 등 질서를 추구하는 것들은 사실 인간의 관점으로 명명된 물고기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데이비드는 한때 우생학자로서 생물을 분류하곤 했다. 생물의 우열로 나누고, "우수한" 종과 "열등한" 종을 구분하려는 사상도 인간주의적 관점인 백인 우월주의 사상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질서'라는 것은 사회에서 생물 중 하나인 사람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고, 그 기준에 따라 서열을 매기는 모습과 닮아 있다. 비교와 서열 매기기는 많은 사람에게 큰 스트레스와 상실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이것은 '집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밀러의 사랑 스토리로 풀어냈다.


 사다리와 우생학적인 관점으로 본 우리는 서로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신을 재정의하려는 모습과 일치했다. 우리는 좋은 학교, 좋은 직장, 높은 연봉 등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그 기준에 맞추려 노력한다.







일부는 그 혼돈 속에서 스스로 질서를 찾고, 자신의 의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저자의 이야기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양한 메시지를 남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단순한 철학적 의미를 넘어, 우리의 정체성과 자아를 탐구하는 데 있어서도 깊은 통찰을 주는 책이다.


 우리는 위치와 계급이 아닌 서로의 소중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내재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혼돈 속 질서 짓기는 결국 인간의 관점으로 도덕과 법이라는 새로운 틀로 재탄생했다. 그리고 우생학을 내세워 사다리라는 계급을 만들고, 그 질서 안에서 살아갔다. 이에 지친 개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갖기 위해 또 다른 질서를 만들려 노력한다.





혼돈 속에서 질서 짓기는 어불성설인가?


 도덕과 법은 어떤가? 우생학적인 사다리에서 높은 사람이 하층을 다루기 위해 만든 시스템일까? 이에 대한 답은 복잡하다. 도덕과 법은 인간 사회에서 정립된 규범이며, 이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때로는 도덕과 법이 상호 보완적이고 일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괴리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법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을 때도 있다. 또한, 우생학적인 사다리에서는 특정 계급이나 집단이 다른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정의할 수 있지만, 이는 종종 편견과 차별을 초래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혼돈 속 세상에서 질서 짓기는 불가능한가?에 대한 마지막 질문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든 동물이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위에 조금 더 평등한 동물인 인간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도 물고기를 분류하고 명명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 않을까? 하나의 질서 짓기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인간 사회의 현실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사회적 계층, 경제적 격차, 인종 차별 등의 문제들이 이를 뒷받침하여 보여준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다뤄져야 할 과제이다.


 저자의 관점에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은 우리가 보통 물고기로 알고 있는 것은 사실 그저 우리가 그렇게 명명하고 분류한 것이며, 그 자체로 실재하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이 현실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도 단순히 사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게 형성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결국, 이 문장은 인간이 만들어낸 현실과 개념을 의심하고, 그것을 다시 생각하고 재해석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예술을 이용한 질서는 잠시나마 화합되지 않을까?


 예술은 인간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물과 생물을 대할 때, 각 객체가 갖는 고유한 경험과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 그림, 음악 등을 활용한 예술적 소통은 혼돈 속 질서 짓기에서 다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서로 다른 시각과 경험을 공유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입장을 인정하며, 감정을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로 쓰인다면, 화합과 통합이라는 새로운 질서가 잠시나마 이루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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