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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영이 Nov 15. 2024

[또 하나의 소원]

    햇살은 따뜻하다 못해 덥게 느껴져 자동차 문을 열고서 시골길을 달린다. 모처럼 한가로움을 누릴 시간이 되어 부부가 관룡사를 찾아간다. 추수가 끝난 들판은 텅 비어있고 산 등성이 나무들은 단풍을 몰아내고 낙엽이 진다. 굽이굽이 포장길을 달려 이제는 경사가 큰 산길이다. 몇 년 전 동료들과 등산을 온 기억을 더듬어 본다.

   관룡사 입구 주차장에 이르러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은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경사로에 진을 친 아름드리 은행나무는 작은 바람에도 노란 잎이 우수수 떨어져 콘크리트 바닥을 온통 노란색으로 장식을 하듯 우리를 환영한다. 눈을 들어 살피면 쭉쭉 뻗은 아름드리 소나무는 지나온 세월을 알려주는 듯하다. 멀리 병풍처럼 둘러쳐진 바위가 절터의 온화한 지세를 머금고 스님의 청량한 불경 읊는 소리와 목탁 두드리는 음은 산사에 와 있음을 알려준다.

‘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 준다’는 관룡사는 창녕 동쪽에 높고 크며 숲이 빼어난 화왕산 자락에 있다. 화왕산 꼭대기에 용이 살고 있는 연못이 있는데 절을 창건할 때 용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여러 사람들이 신비롭게 여겨 절의 이름을 관룡사라 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관룡사의 모든 건물이 불에 타 사라졌으나 오직 약사전만이 화마를 피했다. 그런 연유로 이곳에서 빌면 한 가지 소원을 이루어진다는 설이 널리 퍼졌다고 한다.

    관룡사에는 신라시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용선대 석조여래좌상과, 조선시대를 상징하는 약사전과 고려시대 불상인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조선시대 건축과 불상의 전형인 대웅전과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대좌와 관세음보살벽화 등 여러 국가지정 문화재가 있다.

   아름다운 계곡을 끼고 계절에 따라 진달래와 억새 군락지의 길목에 있는 관룡사는 등산객의 발걸음을 잡기에 충분하다. 대웅전 주변에는 국화 화분이 불자들의 보시로 가을 정취를 더해 주었다. 대웅전은 주로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시는 건물이지만 관룡사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 양옆에 약사여래와 아미타불을 함께 모시고 있다. 대웅전 보수 공사를 할 때 건물을 지을 당시의 연혁이 기록된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태종 1년인 1401년에 세워졌고 임진왜란 때 불타는 등 영조 25년인 1749년에 세 번째로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구조인 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안쪽 천정은 우물 정(丼) 자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가운데 부분을 한 층 높게 한 점이 특징이다. 나무를 다듬은 기법과 공포를 구성하는 방식 등에서는 조선 초기와 중기에 해당하는 양식을 보이고 있다. 불단을 한 단 높인 점 등은 조선 중기 이후의 특징을 보이고 있어 조선 전기와 중기 이후의 건축 기법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건축으로 일반인뿐만 아니라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늦가을에 찾은 창녕 화왕산 자락 관룡사는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남지에 터를 잡고 도시에 드나들기 시작한 지 삼 개월이 지났다. 집 정리를 어느 정도 마치고 조금씩 여유를 가진다. 가까이 있는 쉼터를 찾아 삶의 활기를 얻는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주변에 다양한 문화재가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낸다. 소중함을 잊고 있다. 나 또한 잠깐 지나가다 살피는 정도다. 관룡사 경내를 돌아보며 문화와 전통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느낀다.

    사찰 방문이 가을의 정취와 더불어 수백 년 아니 몇 천 년 전 조상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다행이다. 일상 속에서 자연과 어울린 인공의 미를 느끼고 삶의 흔적을 확인하는 시간은 엄숙한 예술을 만나는 또 다른 산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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