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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수영장]

by 우영이

마당에 뿌리내린 잔디조차 기가 꺾여 바닥에 널브러졌다. 창밖으로 뿜어져 오는 열기는 방안에 머물러 냉방기기 가동을 줄일 수 없다. 밤낮을 가릴 틈이 생기지 않는다.
온라인 판매상에서 주문한 물건이 도착하였다. 종이 상자에 담긴 물품은 혼자 옮기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가로로 뉘어 굴려서 위치를 바꾼다. 작은 포장지에 담긴 부품들을 개봉하는데 펼치기 전에는 가늠이 안 된다. 자동차에 싣는데 짐칸이 부족하다. 아내의 과한 욕심이 내 몸을 지치게 만든다. 잠깐 사이에 속옷까지 젖는다. 자동차 냉방장치는 제 몫을 다하는데 얼굴에 오른 열기는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주택 마당에 짐을 풀고 기구 조립에 나섰다. 시작할 때 구름이 가득하던 날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공교롭게도 세차게 비가 내린다. 비를 피했다가 하라는 성화에도 땀을 식힐 요량으로 진행된다. 외곽지지 파이프를 연결하여 전체 모양이 완성되었다. 대략적인 크기가 잡힌다.
자갈이 깔린 바닥에는 완충재를 넣고 널따란 깔개로 보호막을 이루었다. 어른 키 세 길이나 되는 넓이에 높이는 가슴팍까지 이른다. 수도꼭지를 연결해 물을 채우는데 몇 시간째 이어진다. 절반 높이까지 채워질 무렵 아내는 오리 보트에 공기를 불어 모양을 잡는다. 잠깐 사이에 물놀이장에 뛰어든 아내와 처제는 물장구를 치면서 어린아이처럼 돌고래 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나까지 불러들일 심사로 두 손 가득 물을 담아 흩뿌린다.
장면 장면이 카메라에 담긴다. 세 모녀 사이에 끼어 앵글에 남긴다. 다음 주에 자식 내외가 꼬마를 데리고 전원주택이 있는 이곳으로 다니러 온다. 손주를 위한 간이 수영장이 어른들의 차지다. 오히려 중년 부부가 더 신이 났다. 이런 것이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격인가?’ 한바탕 물놀이로 체온이 내려갔다. 주변 정리를 하고 덮개 고정으로 마무리한다.
손주가 사용할 물놀이장 점검은 어른들의 왁자지껄한 물장구 놀이 기구다. 이런저런 이유로 계곡에 발 한번 제대로 담근 적 없이 한더위를 보냈는데 이제는 시나브로 물 관리만 제때 한다면 여름 한 철 더위 걱정은 사라질 모양새다.
아득한 그 시절 여름이면 마을 입구 냇가로 달려가 팬티만 입고 멱감던 그림이 떠오른다. 어른들의 걱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놀이에 빠져든 개구쟁이들의 모습이다. 지나간 시절은 추억으로 기억 저편에 자리한다. 오로지 쉽고 편한 것에 치중하는 현실이 격세지감이다.
손주의 방문이 기다려진다. 단어 한두 개를 붙여 말하고, 행동 하나하나에 애교가 가득한 귀염둥이의 재치가 눈에 그려진다. 중년 부부에게 행해지는 손주와의 영상 통화와 자식이 보내주는 동영상은 웃음과 활력을 가져다준다. 물을 유난히 가까이하는 녀석이 물장구치면서 탄성을 올리는 시간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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