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이 지나고 밤이 길어지면서 새벽이면 두어 번 잠을 깬다. 세월이 흘러 중년에 접어든 나이에 시간은 거스르지 못하는 모양새다. 생리적 해결이 우선이다. 시계는 새벽 네 시의 숫자판을 액정으로 남긴다. 넋 놓고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이불속으로 몸을 비집는다.
설정된 알람은 뒷전이다. 울릴 시각 전 해제로 이어진다. 마당의 잔디에 손바닥을 쓸어본다. 차가운 서리가 손가락을 움찔하게 만든다. 물 한 병을 챙겨 차로 향한다. 구장까지는 오 분 거리다. 앞뒤 유리에는 성애가 시야를 방해한다. 기온 차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교차로 두 개를 지나 아파트 옆에 주차한다. 이른 시간이라 어스름 불빛마저 도움이 필요하다.
멀리 어른거리는 물체가 있다. 희미한 시야에 분간이 어렵다. 출발선에는 타격음이 뚜렷하다. 부지런한 분들이 앞서 운동에 나섰다. 비슷한 시각에 팀을 이루어 만나는 사람이 둘이다. 한 명은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과수 농사를 짓는 분이고, 다른 분은 여든에 이른다. 공직 은퇴 후 오로지 운동에 전념한단다.
며칠째 조를 이루어 경기에 나선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실력을 뽐낸다. 서로에게 경기 조언에 몇 홀을 돌았는지 아침 햇살을 등에 업는다. 클럽과 공에 묻어나는 티끌과 이물질이 손을 자주 가게 만든다. 공식 경기를 치른 적은 없지만, 점점 타수를 줄여나간다. 기록 경신이 자신을 다짐하는 계기가 된다. 지역 인근 구장을 두루 다니면서 지형을 익히는 중이다. 무엇보다 코스 공략은 힘 조절과 구장 적응이 지름길이다.
함께하는 운동은 기량과 인생의 지혜를 얻는 시간이다. 욕심은 화를 부른다. 적당한 힘이 오히려 좋은 결과를 안긴다. 단 한 번에 홀로 공을 넣는 실력은 연마의 결과다. 사회라는 삶도 예외는 없다. 만 시간의 법칙을 연계하지 않더라도 일정한 노력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 서두르다 보면 공은 빗나간다. 하나둘 여유는 경륜 일부가 된다. 잘 될 때도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지 않나.
길동무가 되었다. 띠동갑이라는 친근감에 나이를 건너뛰어서 하나가 된다. 서로 전화를 걸어 운동장에 나갔는지 아닌지를 묻는다. 각자가 자신의 업무를 하면서 틈틈이 모여 운동 종목으로 같은 방향을 걸어간다. 삶에서 동반자는 서로에게 힘이 된다. ‘멀리 있는 길을 가려면 혼자보다 여럿이 낫다’라고 했다.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로 인해 평범한 일상들을 보낼 때 특히 이 말을 실감하게 된다.
서로 알지 못하는 관계에서 한 공간에 있다는 그 자체에 서로를 녹여낸다. 18홀 규정 타수를 목표로 오늘도 새벽안개를 헤집고 호쾌한 타격음을 날린다. 잔디 위를 걸으며 하늘에 드리워진 태양과 구름의 조화를 틈틈이 카메라에 담는다. 가끔 내려주는 자연의 혜택을 나만이 누리는 호사다. 사진은 글의 장식품이 되고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하루하루가 설렌다. 구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고 마음은 들뜬다. 세상일이 이처럼만 다가오면 보탤 것이 있으련만. 그래도 긍정으로 분위기를 모아보자. 가을 단풍이 계절감을 높여준다. 내일은 어느 구장으로 누구와 원정을 나가볼까나. 한 조가 될 이들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