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봉지]

by 우영이

작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주인의 보살핌에 따라 수확물을 안겨 준다. 일찍이 텃밭을 가꾸고 계절마다 다른 씨앗을 뿌리고 곧이어 결실을 얻었다. 짧게는 두 달, 길게는 반년 걸려 마무리가 된다.
봄이면 고추 모종을 내고 그 옆 공간에는 옥수수도 심었다. 고구마 순을 옮기고 무와 배추도 덩달아 자리를 잡는다. 일손이 적게 가는 들깨 씨를 호기롭게 뿌렸으나 결과는 처참하다. 큰 통에 넘쳐나리라는 기대와 달리 이파리 몇 번 따먹고 종자 정도 건졌다. 생각만큼 쉽지 않다.
텃밭에는 무와 배추만 남았다. 기온이 영하로 곤두박질하기 전에 굵어진 무 뿌리는 뽑아서 따로 저장해야 한다. 자칫 했다가는 바람이 들어 소용이 다 할 수 있다. 집 뒤뜰에 구덩이를 파고 움집을 짓듯 비바람을 피할 수 있게 부지런히 삽질한다. 배추는 김장까지 아직 시일이 남아 일부만 몇 포기 뿌리째 옮겨 거꾸로 뒤집어 땅에 파묻는다. 몇 년간 습득한 최선의 보관방법이다.
찬 바람이 불 때면 푸른 채소는 천정부지로 값이 나간다. 오래전부터 아내의 재촉이 있다. 대문 밖 빈터에 자그마한 비닐 덮개를 만들어 한겨울에도 채소를 자가공급하잖다. 말로야 무엇을 못 하랴. 우선 인터넷으로 아치형 구조물과 비닐을 사고 작물을 선택한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좋아할 법한 쌈 채소가 제격이다. 흔하디 흔한 상추가 좋다. 상추 품종도 한둘이 아니다. 세 가지 이상 간격을 맞추어 씨앗을 뿌린다. 쉽게 생각했는지 듬성듬성 빈자리가 많다. 모종 상에 들러 종류별로 구색을 갖춘다. 때마다 비닐을 들추어 흠뻑 젖게 물뿌리개를 부지런히 든다. 상추 잎사귀가 커가는 속도가 만만찮다. 이랑 바닥을 덮어 초록에 자주색이 띠를 이룬다.
상춧잎 따내는 재미에 푹 빠졌다. 포기마다 겹겹이 커가는 기세가 세 식구 푸성귀 떨어질 날이 없게 만든다. 가끔은 조급함에 성장점을 뚝 꺾는 실수도 저지르지만, 하루하루 키워 한 닢씩 따내는 정성을 동시에 맞본다. 무공해에 식감이 부드러운 쌈이 식탁을 풍성하게 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작물 재배에 시간을 들인다. 수십 년 몸담아 온 2세 교육도 끈을 놓지 않았다. 어느 곳이든 숱한 사연이 있고 제각기 이유가 생긴다. 잘 키워 보겠다는 욕심이 지나쳐 무리한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본의 아닌 부작용이다. 작물도 아이들도 때가 있는 법이다. 기다릴 때와 재촉할 시기를 적용하는 일이 관건이다. 두 돌 막 지난 손주조차도 내키지 않은 것은 ‘싫어 싫어’를 내뱉는다. 여유는 여유가 있을 때 여유로워지는 법이다. 조급하지 않고 천천히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본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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