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도포 자락]

by 우영이

창가 대발에 줄지어 놓인 대봉감이 잘 익은 홍시로 손에 잡힌다. 달콤함이 옛 기억을 쓸어 담는다. 지난날 시골에서의 군것질거리는 늘 정해져 있었다. 봄에는 오디 열매, 가을에는 산깻묵, 홍시와 곶감은 행사 후 가끔 넘겨지는 고급스러운 간식이다. 무와 고구마는 식량이나 다름없었다. 하루 저녁에 생고구마 몇 개라도 깎아 먹을진대 부모님의 호통이 떨어졌다.
늦가을이 지나고 초겨울에 접어든 음력 시월, 기다려지는 행사가 있으니 문중마다 선산에서 조상의 묘소에 지내는 제사다. 어른이나 젖 먹이 아이 구분 없이 한 사람 몫의 음식을 받을 수 있으니 이때야말로 차별이 없는 분배가 이루어진다. 한몫이라도 더 받으려고 찬 바람이 불어대는 비탈길을 아장아장 걷는 코흘리개 동생까지 업고 오솔길을 오르내린다. 그 옛날 명당이라며 모신 산소는 어찌 그리 험한 곳에 자리 잡았는지.
참석자 숫자대로 떡과 고기 맛을 볼 수 있는 평등한 사회다. 운이 좋다면 귀하디 귀한 과일 몇 조각은 횡재 중의 횡재였다. 이제는 사라져 가는 풍습 중의 하나다. 지금은 어떤 문중에서는 시사를 지내지 않거나, 종중 재실에서 음식을 차려 놓고 술잔을 올린다. 한몫받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옛 풍경이다. 어른들의 조상 숭배에 지나지 않는다. 변하는 세태만큼 다른 모습이다.
할아버지는 시사에 빠짐없이 참석하였다. 몇 시간씩 걸리는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걸어오신다. 고향 동네를 떠나 옆 면 소재지로 거처가 바뀐 후에도 행사에는 지나치지 않았다. 두루마기를 입고 옻 먹인 갓을 쓴 풍채는 영락없는 촌로 그 자체다. 어린 손자들은 오로지 한 곳에 시선이 몰려 있다. 할아버지의 두루마기 넓은 소맷자락에서 나오는 제물이다. 인사는 뒷전이다. 말 그대로 ‘염불은 고사하고 잿밥에다 관심이다.’ 어른들의 지청구에도 할아버지 소맷자락부터 들춘다.
옷소매에서 손을 펼칠 때마다 하나둘 먹거리가 쏟아져 나온다. 보물 창고가 여기다. 이때는 자리 쟁탈전이 벌어진다. 열 명이 넘는 손주들이 제각기 맛난 것을 먼저 받으려고 밀치고 실랑이를 벌인다. 힘에 밀린 동생들은 울음보를 터뜨린다. 아니 유달리 챙겨주는 아이가 있다. 사촌들끼리 시샘을 낸다. 할아버지가 누구를 더 사랑한다고 부모님께 일러바치기도 한다.
음식의 꿀 조합은 말랑말랑한 콩시루 떡과 잘 저장된 홍시다. 달콤한 홍시에 시루떡이나 흰 떡을 찍어 먹는 것은 호사다. 어쩌다 도포 자락 바닥에 든 홍시가 터져, 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할 때면 옷깃에 붙은 홍시 조각도 버리지 못한다. 나눌 수 있는 곶감이나 과일보다 독차지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먹거리가 흔하디 흔한 지금과는 사뭇 비교된다. 단출한 식구에 일인 가구까지 음식이 처치 곤란인 경우가 허다하다. 어쩌면 짧은 시간에 우리네 사는 형편이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을까.
전통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것들이 사라져 간다. 우리의 옛 정신이 대대로 전해지지 못하고 단절된다. 편한 것을 좇아 세대를 아우르는 행사는 찾기 어렵다. 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계기가 줄어든다. 기껏해야 집안끼리 만나는 때는 자녀의 결혼식이나 연로하신 분의 장례식에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혈연의 관계는 문헌에서나 찾아질 일인가.
인터넷이 발달한 세상에서 사회 관계망 서비스가 대부분을 알려준다. 누가 어느 곳을 여행하고 있는지 아니면 무슨 행사가 펼쳐졌는지 고스란히 드러낸다. 넓고도 좁은 세상이다. 그런데 서로의 정을 느끼지 못한다. 어쩌면 사회적 외톨이가 많아지는 원인 중 하나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무덤도 묘사도 먼 남의 이야기가 되어간다. 윗대에서 내려온 친척이라는 한 울타리로 지내온 끈끈한 정이 데면데면한 형식으로 치닫는다. 형제가 아닌 사촌이라는 단어조차도 잊힐 날이 온다. 할아버지의 도포 자락 품이 그립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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