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가 봐]

by 우영이

부엌 쪽에서 아내의 도움 요청이 있다. 한창 떠오른 글귀를 옮기는 중이다. 틈을 두고 다가가 본다.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이기에 목소리를 높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딸이 한마디 던진다. ‘왜 화부터 내냐’고 참견이다. 그냥 다른 때보다 목소리가 커졌는데 말이다.
둘째가 한술 더 뜬다. '남에게만 친절'하단다. 이게 나의 모습일까. 내 주변 사람에게는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가족에게는 큰 목소리로 대하는 일상이란 말인가. 나 자신을 돌아본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자신의 모습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당연한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 행동이 옳은 일인지 잘못된 것인지도 구분 못한다. 과연 오늘 일도 그런가. 딸과 아내로부터 비난을 받아야 마땅한가.
뭐가 잘못되었고 무엇을 고쳐야 할까. 스스로 되뇌어 본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침에 있었던 사건을 복기한다. 아내의 도움 요청에 무엇이 그리 목소리를 높이게 만든 것일까. 내가 판단한 것은 혼자서도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인데도 성가시게 도움을 요청해 진행하고 있던 일을 중단하게 만든 게 원인일까. 그게 아니라면 그저 아내의 행위가 못마땅해서 나온 반응일까.
아빠는 ‘병원에 가 봐야겠어요’라는 말에 갑자기 화를 버럭 내며 소리를 지른다.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한 호흡 쉬면서 그 자리를 피하면 될 일인데 둘의 갈등이 깊어가는 느낌이다.
혼자 곰곰이 반추한다. 내가 과민 반응을 보인 것인가. 딸이 이성 친구를 사귀면서부터 나와는 소원한 관계가 이어진다. 멀지 않은 날 배우자를 따라 떠나게 되는 날을 염두에 둔 것인 양, 얕은 부녀간 정이라도 줄여보고자 하는 무언의 행동일까. 갑자기 섭섭해진다. 아니 괘씸한 생각까지 겹친다. 지금까지 평소 알고 지낸 딸의 언행과는 다른 반응이다. 단순히 그게 전부일까. 가장으로서 만족하게 해주지 못한 것들에 대한 불만의 표출인지 알 수가 없다.

세상에는 화로 가득한 사람들이 숱하단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화살이 향한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기도 하고 사람을 괴롭히는 사례가 쉼 없이 일어난다. 어쩌면 멀리 있는 일이 아닌 나와 내 이웃의 일인지도 모른다.
작은 아이 또래 중에는 가정을 이루고 가족이 몇이나 되는 이들도 있다. 큰일을 앞두고 조바심과 혼란스러운 마음이 드러난 것일까.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정말 내가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할 정도인지 무거운 발걸음이다. 아니 신뢰받지 못하는 가장의 무게를 온몸으로 짓누르는 하루다.
결혼 후 자녀를 낳고 길러 온 지난날의 일들이 스친다.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퇴직 후 삶에 대한 일상을 되돌아본다. 자식의 한 마디가 나의 일상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화를 다스릴 줄 알아야 나 스스로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시원한 바닷바람이라도 씌며 머리를 파도에 씻어내련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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