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을 만나는 일은 늘 기다려진다. 자식이 대학 진학을 하면서 집 떠나 생활한 것이 이십여 년에 이른다. 지금껏 살아온 인생 절반이 타향살이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 했는데 혼자일 때는 그렇게 마음이 쓰였다.
군대 전역을 하고 직장 생활에 접어들면서 지속한 하숙생 신세는 지금까지 이어져 온다. 결혼에 이어 자녀까지 둔 아들이지만 볼 때마다 같은 생각이 든다.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손주라도 보고 싶을진대 날을 잡아야 가능하다.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니 한번 찾아가는 길이 천릿길이다.
손주가 한 단어씩 말을 하다가 이제는 세 어절 이상 연결해 어른들과 대화가 된다. 가끔은 며느리의 통역이 필요하다. 붙어 지내는 엄마와 아가의 끈만큼 무슨 말이 필요할까. 모처럼 사나흘의 여정으로 아들 집을 찾아간다. 으레 하는 방문이 싶지 않다. 옆 동네 가듯 채비해 떠나면 좋으련만 현실은 다르다.
주말이 끼어 기차표 예매를 끝냈다. 출발 몇 주 전부터 서두르지 않으면 원하는 시간과 원하는 자리 얻기가 어렵다. 들뜬 마음에 방문하는 표는 확보했건만 돌아오는 표는 놓쳤다. 행운과 요행으로 뒷일은 미루고 귀요미 상봉에 일 처리를 앞당겨 행한다.
아내와 나란히 역으로 향한다. 역 대합실에는 앉아 쉴 공간도 없을 만큼 사람들로 붐빈다. 출발 시각에 맞추어 승차장으로 향한다. 이동하는 사람만큼 기관차 둘을 연결한 장대 열차가 우리 앞에 섰다. 여행은 마음을 여유롭게 만들어 준다. 가족이 또 다른 가족을 만나러 가기에 더 설렌다. 자식이 성장하면 독립된 가정을 꾸리는 게 당연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 아쉬움이 더하다.
영상으로만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오늘은 한 달 여 만에 두 팔로 등을 껴안는다. 아들과 며느리는 가벼운 포옹으로, 손주를 번쩍 들어 본다. 할아비 할미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갑자기 부드럽고 가녀린 손가락으로 턱을 어루만지고는 할비 수염이란다. 엄마도 없고 자기도 없단다. 첫 손주의 행동에 입꼬리기 절로 올라간다.
예정일보다 한 달 먼저 세상 밖으로 나와 걱정이 많았고 첫 돌까지는 성장이 늦었다. ‘오뉴월 하루 볕이 무섭다’라는 옛말을 실감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이제는 모든 면에서 성장이 중간보다 앞쪽에 있단다. 아이 돌보는 며느리와 아들의 정성이 지금에 이르렀으리라.
오물오물 먹고 사뿐사뿐 걷는 것과 책장 넘기는 것, 심지어 우는 모습까지 예쁘게 다가온다. 열 일 미루고 달려온 주말이 훌쩍 지나간다. 안타깝지만 집에 갈 일이 막막하다. 기차표가 아예 매진이다. 결국, 하룻밤을 더 보낼 수밖에 없다. 애초에 부부가 계획한 것과 달리 3박 4일의 방문으로 마무리되었다.
부모의 마음은 다 같지 않을까. 자식이 아무리 나이 들었더라도 자식은 자식이니까. 팔순 넘은 부모가 예순이 다 된 자식에게 이런저런 걱정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먼저 산 경험을 자손에게 들려준다. 삶 자체보다 그 속에 녹아있는 자산을 물려주고 싶어 한다. 물질보다 중요한 정신이 배어든다. 집집마다 가풍이 있지 않나.
다음 방문이 기다려진다. 아내에게 부탁해 둔다. 봄이 되면 해산을 하는 며느리가 좋아하는 음식, 마음 편히 먹고 쉬고 갈 수 있는 그들만의 자리를 준비해 보자는 숙제를 남긴다. 곧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