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의 날]

by 우영이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는 날은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지자체 프로그램 수강 이수와 함께 이어져 온 나날이 삼 년 째다. 같은 생각을 지닌 이들이 모여 작은 조직을 이루었다. 처음에는 십여 명으로 출발했으나 그동안 한 사람 한 사람 자기의 길을 떠나고 그 절반만 남는다.
두 달에 한 번의 정기 모임은 정보와 삶이 영글어진다. 이런저런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어지다가 드디어 저녁 자리가 마련되었다. 한 해를 보내는 즈음이라 근사하게 고깃집에서 속을 채운다. 약간의 술과 지나온 생활의 이야기는 각자의 건강과 손주들의 재롱에 고기 타는 줄도 잊은 듯하다. 가벼운 한 잔의 술은 분위기를 무르익게 만들고 서로의 속마음을 확인해 주었다.
식사를 마무리하면서 곁들인 수정과 한 잔이 깔끔한 입맛을 유지하게 만든다. 해가 거듭될수록 서로를 격려하고 챙겨주는 마음이 새록새록하다. 새해에는 더 알찬 모임을 기원하면서 한 해의 짐을 벗는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강변에서 불어오는 저녁 바람이 코끝을 시리게 만든다. 아파트 사이로 다니는 노선버스에 몸을 싣는다. 도시철도와 달리 요금을 내기 위해 카드를 기기에 갖다 대는데 반응이 없다. 다른 카드를 찾지만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주머니에서 지폐 두 장을 꺼내려 몸을 숙이는 순간 윗옷에 넣어둔 휴대전화기가 떨어졌다.
버스 계단 모서리에 액정이 닿을 때 섬광이 이는 듯했다. ‘예삿일이 아니다’라며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는데 바탕화면이 누른색으로 바뀌고는 반응이 없다.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기쁜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 맛있게 먹은 저녁이 가슴을 먹먹하게 누른다.
집에 돌아와 여러 버튼을 눌러본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수리점에 가든지 새 기기를 사는 길뿐이다. 성능이 그런대로 괜찮았기에 핸드폰을 떨어뜨린 당시의 상황이 내내 못마땅하다.
어쩌다 휴대폰이 주연인 세상에 우리는 살게 되었을까. 당장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다. 사회 관계망의 확인은 노트북으로 가능하지만, 금융서비스는 애당초 꿈이다. 다음날 약속한 사람과 시간이 늦어져도 전할 방법이 없다. 휴대전화기에 저장된 번호 외에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단 몇 시간 만에 디지털 세상에 살아가는 현실과 벽을 쌓았다. 답답함이 가슴에 커다란 쇳덩이를 올려놓고 발목에 모래 포대를 매단 기분이다. 집 안 구석구석 서랍을 열어본다. 사용하다가 넣어둔 오래된 기기를 꺼내어 전원을 켜는데 호완은 아득하다.
날이 밝기만을 기다린다. 새벽 창틈으로 비치는 초승달은 초조함을 더해준다. 행여나 하는 기대감으로 서비스 센터를 찾아 직원의 대답을 기다린다. 액정까지 교체하는 큰 비용이 뒤따른다. 작은 실수가 경제적 손실과 시간을 앗아간다. 삼십 여분의 기다림 끝에 기기는 변신하였다.
단 하루 짧은 시간이 며칠이나 된 듯하다. 하루의 시작을 기기에 의지해 마감까지도 스마트폰으로 닫는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손 안에서 해결된다. 시간에 쫓겨 발을 동동거리는 일도 추운 날씨에 거리를 쏘다닐 사정도 없다. 거실에 앉아 공과금을 처리하고 구매 대금을 이체하였다.
기계에 예속되어 가는 인간의 실태를 만끽한다. 스마트 시대에 디지털 기기 활용도가 높으면 더 큰 충격이 뒤따를 테다. 지난날 아날로그적인 생활에 잃어버린 지갑 속 작은 수첩이 이에 대적할까. 오로지 가족 몇 연락처만이라도 머릿속에 저장해 두어야 하나. 휴대전화에 비견할 저장 장치라도 따로 두어야 할까 보다. 암흑의 하루가 길었던 시간이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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