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들 가족의 방문이 있다. 다가오는 설날에 근무가 계획되어 있는 터라 사전 인사를 오는 셈이다. 그 일이 아니더라도 며느리가 둘째를 가져 몸이 무거워지기에 오히려 잘된 일이리라.
두 돌 막 지난 아이를 데리고 멀리 어른을 찾아 오가는 일은 짐이 예사롭지 않다. 한 주 가량 일정으로 외가와 친가를 두루 다녀 대형 가방은 혼자 이동조차 어렵다. 작은 가방은 등에 지고 두 손에까지 움켜쥔다. 직장 따라 몇 시간 거리인 수도권에 터를 잡고 있기에, 부모와 자식이 서로 만날 수 있는 날이 드물다.
기차 도착 시각에 맞추어 역으로 마중하러 간다. 아들 가족 세 명과 포옹으로 그간의 정을 확인하는데 손주의 재롱이 시간을 잊는다. 한 마디 한 마디 건네는 말이 어른과 대화가 이어진다. 손주는 의사 표시가 분명하다. 좋은 것과 싫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주문한다. 아이의 등장으로 집안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말도 조심조심, 키 높이에 거슬리는 물건들은 애당초 정리대상이다.
할비집에서 첫 밤은 강행군의 일정 탓에 잠이 일찍 든다. 저녁밥을 먹는 작은 입은 오물오물하는 모습만 보고 있어도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안겨주는 딸기와 감귤 조각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더 주세요’를 연이어 말한다. 단어 구사력이 못 보는 몇 달 사이 훌쩍 성장한 모습이다. 손주는 ‘고모, 고모’하며 딸을 잘 따른다. 엄마와 비슷한 나이여서 그런가.
포근한 햇살의 기운을 동반자 삼아 겨울 백사장을 찾았다. 모래에 어른 손바닥으로 가려지는 작은 발자국을 만들고 두 손으로 만지는 감촉을 반복한다. 한 줌 쥐어 할아비 할미에게 던지는 시늉이다. 강한 바람으로 더 나아갈 수 없어 돌아보고 돌아보며 발길을 돌릴 뿐이다.
손주는 집으로 돌아와 거실과 안방, 작은 방을 쉬지 않고 오간다. 아래층과의 층간 소음 갈등이 염려된다. 여기저기 부딪힐까 봐 뒤따라 다니는 어른이 앉는 자리를 먼저 찾을 태세다. 눈길이 미쳤지만, 급기야 벽에 머리를 박아서 울음을 터뜨린다. 아이의 몸짓에 균형 감각이 아직은 더 필요하리라. 열 번 잘 보다가도 한 번 실수하면 비난이 이어지는 게 육아가 아닌가.
온 식구가 아이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눈을 집중시킨다. 아기 방을 기웃하는 그때, 손주가 ‘할비, 할미 나~가’한다. 챙겨 주고 안아 줘도 소용이 없다. 고모에게만 안긴다. 아이의 눈에 비친 현실이다. 밤이 늦었는데 쉽게 잠자리에 들지 않는다. 낮에 운전한 것을 떠올리며 ‘내일 할비 차 타고 가야 하는데’ 했더니 그제야 ‘할비 가’라는 말 은 사라지고 대신 나갈까 했더니 돌아오는 답이 '아니'란다. 두 돌 지난 꼬마의 맹랑한 반응에 웃음이 가득하다.
내일이면 나흘 동안의 혼란스러움을 뒤로하고 돌아간다. 둘째 가진 며느리의 몸도 점점 무거워질 테다. 같이 있는 동안이라도 편하게 지냈으면 했다. 내리사랑이 멀리 있지 않다.
요즘 세태와 견주어 절로 박수가 나온다. '손주가 곧 둘이라오' 자랑처럼 내세운다. 자식이 새 생명을 부모에게 안겨주는 기쁨만큼 큰 것이 또 있으랴. 세대가 이어지고, 종족이 보존되고 가족이 늘어나는 즐거움이다.
저출산이 국가적인 문제가 된 시대에 현상 유지는 하고 있다. 남녀 한 쌍이 자녀 둘을 두니 말이다. 자식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손주 안아보는 기쁨과 동시에 아이가 커 가는 과정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우리 세대에서 느끼지 못한 아이 키우는 감정을 쌓아간다.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