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난 슬플 때 글을 써
죽지도 않고 또 돌아온 각설이처럼 이직 시기가 돌아왔다. 예전에는 경력도 많지 않고, 어디든 붙여 주면 간다는 스탠스였지만 어느 정도 짬이 찬 지금은 지원부터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사주에 역마살이 세 개 이상 있는 사람처럼 이 직장, 저 직장 옮기기도 힘이 들뿐더러 짧은 이력이 앞으로의 커리어에 방해가 될까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이전보다 신중하게 이직처를 알아보고 있는데, 마음처럼 다 되면 이게 인생이겠어.
꽁꽁이 아닌 아주 꽝꽝 얼어붙은 현재 취업 시장에서 누구나 모셔 가고 싶은 인재가 되려면 물 위를 걷고, 돌을 금으로 바꾸며, 날아가는 새를 떨어트릴 정도의 경력과 스펙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네네, 주인님. 시키는 거 다 해요, 정도인 나는 수많은 지원자 중 하나일 뿐. 운이 좋게 면접이 잡혀도 욕심이 너무 앞선 탓인지 최종까지 가지 못하고 빈번히 떨어지기 일쑤다. 이번 글도 정말 가고 싶었던 곳에서 탈락 통보를 받아 우울한 마음에 쓰게 되었다. 열심히 준비한다고 준비했는데,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혼자 열심히 땅굴을 파다가 오랜만에 노트북을 켰다. 상심해 봤자 이미 나는 탈락했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속상한 마음을 얼른 털어내고 앞으로 있을 소중한 기회를 날리지 않고자 면접 오답노트 겸 체크리스트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경력직이 이직하는 이유는 대개 커리어에 대한 고민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1. 지금 회사에서 커리어 방향성이 잡히지 않을 때, 2. 도대체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을 때, (3. 그냥 모든 게 싫어질 때) 이직을 결심하게 된다. 면접에서 중요한 건 일관성이라고 생각한다. 이직을 묻는 질문에 '성장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는데, 다른 답변들이 '꿈은 없고요, 그냥 돈이나 많이 벌고 싶습니다.'의 느낌이면 면접에서 떨어질 확률이 증가할 것이다. 예리한 면접관이라면 '아까는 성장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또 안정적인 걸 추구하시는 것 같네요?'라며 식은땀 뽑아내는 꼬리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야구처럼 면접도 흐름이 중요해서, 한번 잘 풀리면 스티브 잡스에 빙의하는 거고, 한번 꼬이면 면접 할아버지가 와도 못 살린다. 그러니 내가 왜 이직을 준비하는지, 현재 내가 추구하는 커리어는 무엇인지 면접 전에 정리하고 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나도 이래서 망친 면접이 꽤 된다.)
경력직 면접에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는 '앞으로의 커리어 방향이 무엇인지, 우리 회사에서 어떻게 쌓아 가고 싶은지'였다. 물론 일에 대한 열정이 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명확한 목표를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일단 나는 그렇게 깊게 생각해 본 경험이 굉장히 적다. 하루하루 업무 쳐내기도 힘든데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고민할 시간이 있을 리가. 하지만 내가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정년까지 이 일을 할 텐데, 아무런 비전과 계획 없이 기계적으로 산다면 너무 불행하지 않겠나. 회사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성장하고 싶은 방향이 어디인지, 어떤 업무를 통해 실현시키고 싶은지 미리미리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자. 내 커리어 방향을 정하면 이직처를 고르는 기준이 생길 것이고, 면접도 일관적으로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에 면접을 봤던 회사는 글로벌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곳이었다. 그래서 지원 동기를 글로벌 마케터로 성장하겠다는 나의 커리어를 이루기에 좋을 것 같아서,라고 답변했더니 이런 꼬리 질문이 들어왔다. '그럼 글로벌 마케터로 성장하기 위해 현재 하고 계시는 노력이 있나요?' 이 질문을 듣자마자 머리가 하얘졌다. 더듬더듬 '스픽이나 말해보카 같은 앱으로 영어 공부를 하고, 글로벌 마케팅 콘텐츠를 읽으며 트렌드를 습득하고 있다'라고 말했지만 면접관의 표정은 미묘해졌고 거기서 탈락을 직감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뭘 하고 싶다는 막연한 포부만 있었을 뿐 실제로 실천한 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못해도 오픽이나 토익 정도는 다시 갱신했었어야 했는데 그런 것도 없이 '그냥 하고 싶어요' 라며 철없는(?) 답변만 늘어놓은 꼴이었다. 결과가 무엇보다 중요한 취업에서 과정을 강조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만약 내가 얻은 결과가 없다면 괜히 있어 보이려고 포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많이 받은 질문은 지금까지의 경험 중 성공했던 경험과 실패했던 경험을 말하고, 그에 대한 원인과 개선 방향은 무엇이었는지, 실제로 실천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사실 성공 경험은 수월하게 답변할 수 있었는데, 실패 경험에 대해서는 말이 꼬여 이상한 말만 쏟아 냈었다. 대부분의 면접은 내가 어떤 성과를 얻었고, 그래서 이 회사에 어떻게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어필하는 시간이었는데, 내가 대차게 말아먹은 프로젝트가 무엇이었는지 물어보니 당연히 당황할 수밖에. 실패 경험을 묻는 질문에 대한 베스트 답변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내가 생각했을 땐 어떤 원인에서 실패했는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도출한 개선점을 적용해서 다시 프로젝트를 진행해 봤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답하면 어떨까 싶다. 실패 경험을 단순한 흑역사로 치부하기보다는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던 양분으로 포장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회사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묻는 질문은 그냥 무난한 질문을 준비하면 좋을 것 같다. 일전에 한번 눈에 들어 보겠다고 민감할 수도 있는 실무적인 질문을 물어봤는데 면접관 태도가 조금 날카로워졌었다. (그냥 내가 싫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궁금한 점을 묻는 질문엔 팀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협업을 많이 하는 부서는 어디인지, 팀 문화는 어떠한지,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지, 새로 들어올 구성원에게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가볍지만 회사에 대한 관심은 어필할 수 있는 질문이 적당할 것 같다. 어차피 이 질문 하나로 면접의 당락이 좌우되지는 않을 테니 다른 질문보다는 조금 가볍게 준비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장황하게 글을 쓰긴 했지만 아직 나는 탈락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경험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더 나은 곳으로 갈 수 있을지 두렵기만 하다. 하지만 삶은 계속되고 어쨌거나 나는 나아가야 한다. 지나간 과거는 잊고(쉽지 않지만) 다가올 미래를 놓치지 않도록 집중해야지.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 중인 여러분! 우리 모두 파이팅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