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조각 난 멘탈에 순간접착제를 발라 보세요
이직 준비 약 1개월째. 서류 탈락의 고배를 수십 번 맛본 나는 한 줄기 희망처럼 잡힌 면접에 모든 걸 걸기로 했다. 현직자에게 회사의 분위기와 전망,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등을 물어봤고, 합격시킬 수밖에 없는 답변을 열심히 긁어다가 정리했다. 면접 당일엔 필살 메이크업까지 하며 내면도 외면도 갈고닦았더랬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들어준다고 했던가. '제발진짜개처럼일할테니까붙여주기만하세요.'를 염불 외듯 외우며 면접을 준비한 나에게 우주는 응답했다. 1차 면접을 통과한 것이다. 면접 이틀 후 곧바로 나온 합격 결과에 난 이미 그 회사 사무실에 출근한 내 모습을 떠올렸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X회사에서 벗어나는구나... 이게 문제였다. 설레발은 필패라는 그 잔인한 진리를 간과한 것이다.
사흘이 지나도 울리지 않는 휴대폰에 어렴풋이 진작은 했지만 '에이, 설마. 2차까지 봤는데 떨어지겠어?'라며 애써 행복회로를 돌리던 내게 도착한 메일 한 통. '[ㅇㅇㅇ] 면접 결과 안내'. 2차 면접을 보고 나서 4일이 지난 시간이었다.
면접 결과, 안타깝게도 이번 채용에서는 슈슈님을 모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등이 서늘했다. 아, XX... 이 믿을 수 없는 결과를 난 5단계에 걸쳐 받아들였는데, 일단 처음은 '부정'이었다. '아니, 이럴 리가 없어. 분명 다른 지원자한테 보낼 메일을 나한테 잘못 보낸 걸 거야.'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았다. 그렇게 현실을 인식하고 나니 두 번째 단계인 '분노'가 찾아왔다. '2차에서 탈락시킬 거면 면접은 왜 보라고 한 거야? 오후 반차까지 내고 그 폭설을 뚫고 갔는데? 회사에 기름칠 한번 해 줘?' 얼굴에 열이 올랐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거리로 나가 '쓰레기 회사 개망해라!!!!'를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불은 연료가 없으면 금방 꺼지고 만다. 한 번에 모든 걸 태워버린 난 까맣게 재가 되어 버렸고, 세 번째 단계인 '타협'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래... 2차 면접에서 너무 나대긴 했지. 너무 입 바른 소리를 했어. 나 같아도 안 뽑고 싶었을 거야. 다시 이직 준비하자...' 마음을 다잡고 친구들과 가족들한테 '나 떨어짐 힝 ㅜ'하고 톡을 보냈다. 곧바로 다들 더 좋은 회사가 있을 거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천천히 이직 준비하자, 같은 위로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웅 ㅜㅜ' 답장하며 구직 사이트를 열심히 검색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실패와 좌절은 그렇게 쉽게 털어질 감정이 아니었다. 곧이어 난 네 번째 단계인 '우울'과 마주하게 됐다. 집으로 돌아와 식음을 전폐하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 그냥 죽을까... 죽으면 이직 같은 거 안 해도 되는데...' 같은 생각을 하면서. 우울감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게 분명했지만 그때는 영원할 것만 같았다. '그 질문에 그렇게 답하면 안 됐어.', '나는 왜 이렇게 오만하고 멍청할까.' 이미 결론이 난 결과를 계속 반추하며 끝없이 땅굴을 팠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지금 드라마 찍음?' 번쩍, 정신이 들었다.
어차피 면접 탈락은 결정된 일이고 그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울고 불고 난리 쳐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닫자 곧바로 난 '수용'의 단계로 진입했다. 아직 질척거리는 우울을 떨쳐내기 위해 난 아래와 같이 행동했다.
1. 코인노래방 가기
멘탈이 터졌을 땐 노래방에 가서 성대가 찢어져라 노래를 부르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날 떨어트린 회사를 저주하며 마이크로 원기옥을 쏘아보자.
[추천곡 list]
EX - 잘 부탁드립니다
소찬휘 - 현명한 선택
태연 - 스트레스
Idina Menzel - Let It Go
고음 지르고 저주하는 노래면 전부 OK
2. 다른 면접 탈락 후기 보기
집단상담이 효과적인 이유는 비슷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끼리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과정에서 위로받고 치유받기 때문이다. 이렇듯 다른 사람들의 탈락 후기를 통해 '최종면접에서 탈락한 사람이 나만 있는 게 아니구나', '한 번쯤은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구나.'를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다들 원하는 곳에 합격했기를 기원하며 나 또한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3. 노래 들으면서 운동하기
가만히 있으면 자꾸 쓸데없는 생각만 하게 되는 법. 최종 탈락의 현실이 떠오를 때마다 이어폰 볼륨을 최대로 높이고 무작정 뛰었다. 처음엔 이 짓을 왜 하고 있냐며 현타가 오지만 땀이 나기 시작하면 기분은 훨씬 나아진다. 노래는 축축 처지는 발라드보다 3세대 케이팝이나 락을 들어야 좋다.
4. 자격증 또는 하고 싶었던 공부하기
면접 탈락은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런 생각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공부 루틴을 만드는 것이다. 여유가 없어 미뤄 두었던 자격증 공부나 외국어 공부를 하며 바닥난 자존감을 채워 보자. 나도 사놓고 듣지 않았던 강의를 듣고 포기했던 자격증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생활에 루틴이 생기니 나를 덮쳤던 우울감도 많이 증발했다.
하지만 아무리 멘탈을 다잡으려고 해도 불현듯 떠오르는 최종 탈락에 다시 우울의 단계로 돌아가곤 한다. 그래도 처음처럼 세상이 무너질 것 같고 그냥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은 많이 사그라들었다. 이번 탈락을 거름 삼아 다음 면접 때는 기필코 실수하지 않으리. 근데 뭐 실수해도 인생은 망하지 않는다는 걸 명심하자. 탈락의 고통을 맛본 동지 여러분. 우리 모두 파이팅 합시다.